추사의 교육관과 현대 의미화 <인재설>-서론(2 ) 하늘이 인재를 내리는 데 있어서는 애당초 南北이나 貴賤의 차이가 없으나, 누구는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아이 적에는 흔히 총명한데, 겨우 이름을 기록할 줄 알 만하면 아비와 스승이 傳注와 帖括로 그를 미혹시키어, 종횡무진하고 끝없이 광.. 秋史 사랑채 2019.06.23
추사의 교육관과 현대 의미화 <인재설 >-서론(1 ) 2. 人才說-서론 20190623.hwp [조선왕조실록]이나 [완당전집] 序文에 축약하여 기술된 추사의 삶은 形似的으로 보면 대단히 비극적이다. 조선시대의 왕가의 내척, 高官大爵을 무수히 배출한 명가로서 월성위가의 경주 김문처럼 철저하게 파멸되어진 士大夫家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추사는 참.. 秋史 사랑채 2019.06.23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10 사진:허홍범 추사체를 논구한 다수의 후학들은 흔히 추사 말년의 글씨체, 예를 들어 박규수도 언급한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一法을 이루게 되니” 등의 평가로 제주 유배 이후의 서체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짙어, 추사체의 본질을..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9 상우는 1819년, 추사가 과거에 급제한 그 해 가을에 출생한 庶子이다. 이 서간문을 받았을 상우의 나이는 삼십 대 초, 중반으로 추정되는 데, 첫 아들인 상우는 추사의 文氣의 DNA를 이어 받은 바, 부친에게 늘 배움을 청하여, 이 답글 역시 아들에게 추사는 각별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특히 ..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8 네가 말한바 “겨우 두어 글자를 쓰면 글자 글자가 따로 놀아 마침내 歸一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네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眞境의 곳이다. 모름지기 潛心하고 힘써 따라 국 참고 이 한관을 넘어서야만 쾌히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니 절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退轉하지 ..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7 추사가 위와 같이, 어찌 보면 氣高萬丈의 기개로 자신만만함에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다. 추사는 연경 방문 후에도 청나라 문필가들과 계속 학예를 서간을 통하여 담론하고 있었다. 특히 완원은 물론 등석여. 이병수. 그리고 건륭 四大家 옹방강. 유용. 양동서. 왕문치의 서체와 서론을 ..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6 추사의 서슬퍼런 이 변파에 대하여, 유홍준은 비평은 역사적 비평으로 임해야지 전시대의 서가를 후인이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 즉 圓嶠 李匡師(1705-1777)가 죽고 15년이 지나서 태어난 추사가 동시대적인 신랄한 비평을 한 것은, 추사가 역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고, 원교에게 잘못한 ..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5 심지어 붓은 먼저 가고 손은 뒤로 간다(筆先手後)것은 더욱 뒷사람에게 보여줄 것이 못 된다. 서가가 먼저 할 것은 현완과 懸臂에 있어 마침내는 온 몸의 힘을 다 쓰는 데까지 이르는데 지금 ‘붓은 먼저요 손은 뒤라.’ 하고 또 ‘온 몬의 힘을 다해 보낸다.’ 했으니 붓이 먼저 갔는데 어..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4 그러나 필자는 말년의 세속을 탈속한 듯 자유분방한 심혼이 깃든 서체에도 感興하나 초장년의 典雅함을 消失치 않은 淸高古雅한 필체, 필자가 이 글의 서두에 疑問 한 “추사의 글씨는 초.중.장.말년의 구분 없이 나름의, 초년, 장년 서체 역시 高尙 高潔한 옛스런 형성적인 매혹이 깃들.. 秋史 사랑채 2019.06.15
<秋史體에서의 실사구시적인 法古創新>- 3 추사의 글씨 그림에는 추사 삶의 모습이, 그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그려져 있다. 그가 쓴 작품들의 글을 읽으면, 敷衍의 畵題를 읽지 않아도 그 서체만으로도 추사의 心魂을 읽을 수가 있다. 서예는 작가의 마음 그림으로 인간의 性情을 點. 線. 形. 墨色 등의 형식으로, 그 조형성으로 인간.. 秋史 사랑채 2019.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