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 5 此不可晷刻容貸, 請知敦寧府事金魯敬, 設鞫得情, 快正典刑。" 이들 청요직이라 하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수장인 대사간. 대사헌의 탄핵 상소의 내용이 이 지경이니 당대의 안동김문이 장악한 삼사의 언로의 생태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이 토로하는 “더욱더 몹시 가슴 아프고 한탄스러운 .. 秋史 사랑채 2018.08.14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 4 1830년 8월 27일 김우명의 私感의 謀陷 상소로 시작된 이 사건은 순조의 현명한 판단으로 김우명을 파직 시키면서 일단락 되는듯하였다. 그러나 김우명의 삭직으로 안동김문은 추사일문을 죽이기로 안동김문 勢道 굳히기의 파벌적인 정략을 일단락 지을 수 없었다. 이미 효명세가 대리청.. 秋史 사랑채 2018.08.14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 3 而乃敢自居甚高, 動稱士類, 隨事憂歎, 眞若有識者然, 誠不滿一笑也。 然而下段所論, 不過薄物細故, 惟是抑情仕宦之說, 掩護凶逆之實, 不可不快正典刑。 伏乞亟賜處分, 以謝一世焉。" 위와 같이 김노경에 대한 뚜렷한 죄목이 보이지 않는 私感의 謀陷인 이 상소는 안동 김문인 김우명의 .. 秋史 사랑채 2018.08.14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 2 여기에서 스스로 뜻을 이룬 듯 양양(揚揚)하였으니, 본병(本兵)은 숙견(宿趼)에 관계가 되는데도 남쪽에서 머물다가 스스로 와서 하고 싶으면 갑자기 옮기거나 바꾸기를 오직 뜻대로 따랐으며, 탁지(度支)는 일찍이 거치지 못한 바이고, 서번(西蕃)은 세상에서 재물이 많다고 일컬어졌는.. 秋史 사랑채 2018.08.14
추사가 家禍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1 추사가 家禍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hwp 추사가 家禍 <金遇明, 김노경에 대한 탄핵, 고금도 유배> 추사가가 처음 당하는 가화는 부친 김노경에 대한 탄핵이었다. 탄핵 상소를 올린 副司果 金遇明은 1826년, 庇仁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당시 충청우도 암행어사를 수행하던 추.. 秋史 사랑채 2018.08.14
4) 家禍 -서론(16) 이 글을 읽어보면 졸기라 함은 죽은 자의 덕을 기리고자하는 성의와 심의가 있겠으나, 안동김문들의 농단으로 인사의 전횡으로 국세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어가고 삼정이 문란 민생의 삶이 塗炭의 늪에 빠져있음을, 民政의 혼미가 극에 달해 있음의 원인을 알고 있을 사관, 그 원흉이 김..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15) 김조순은 金昌集의 4대손으로 1785년 정조 9년에 문과에 급제 하였다. 정조는 金尙憲의 후손인 김조순이 문과에 입격하였을 때 이미 그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의 등과를 기뻐 반가워하며 ‘풍고(楓皐)’라는 호를 내려주고 심지어 낙순(洛淳)’이었던 이름을 ‘조순(祖淳)’으로 바꾸어 ..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14) 반면 안동 김문이 시파로서의 당색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정조대이다. 이글에서는 안동김문 세도기에서의 金昌集의 4대손인 金祖淳의 역할을 조명해야 하므로, 김창집계 장동 안동김문을 부각하여 기술한다. 장동 김문은 조선 전기 정치계에서는 권세가 미미한 지방 사..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13) 위의 주장은 탕평이란 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정략이었는가, 특히 김진상의 편당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습이 없었다하여 대사헌에 발탁되었으나 오히려 이를 부끄러워 사직한 상소는 탕평책이 반드시 義理의 政略이었는가를 심의하게 한다. 오원의 절박한 極諫은 이를 반증한다..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12) 2. 오원의 관직을 삭탈하라고 하다. 국세의 위태로움과 왕강이 무너진 것에 대한 오원의 상소문 전하께서 ‘탕평(蕩平)’이란 두 글자로 보합(保合)·조화(調和)시키려고 하시자, 한쪽편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봉승(奉承)하며, 무릇 전하의 조정에 선 .. 秋史 사랑채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