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家禍 -서론(11) 조선왕조의 붕당이란 폐단은 위의 글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영.정조의 정략인 탕평책으로 당대 한 시기에는 고른 인재의 등용으로 世道의 정국, 왕권의 안정을 가져왔으나 결국 당색을 넘어서지 못하고 조선후기에는 외척들이 더욱 氣勝, 득세, 勢道의 정치판을 구축하였다. 朋黨이란 존..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10) 그러나 인간의 실존이란 단지 현재를 살기 위해 뭉치고 흩어지는 意志없는 微物이 아닌, 역사의 흐름 속에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軸, 정신인 眞 善 美의 사상으로 존립하므로, 이를 排除시키고는 추사가의 가화는 물론이거니와 終乃는 추사 개인의 배움의 여정, 더욱이 추사의 평생배움 ..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9)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서출 전계대원군의 서자로 항렬로는 헌종의 아저씨로 순원왕후는 영조의 유일한 혈손이라 하여 이원범을 양자로 입적하여 왕통을 승계하였다. 실상 헌종의 후사로는 조선왕실 최초의 대원군으로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종손, 李夏銓이 거론..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8) 효명세자의 대리청정기 전 후 30여 년, 안동김문의 장기집권 세도정치기에서 국왕으로서 왕권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던 순조는 외척들의 정치판이 되어버린 정국에 정조가 반대세력을 이용하여 왕권의 회복을 하였듯이, 안동김문을 세자의 처가인 풍양 조씨, 그리고 벽파인 경주 김문을 ..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7) 위와 같이 개혁과 개인의 悲願, 位相的 왕권 立地에 집착한 갈등으로 인한 病苦로 정조가 서거한 후, 안동김문의 농단과 독란의 전횡으로 조선의 전통적 世道朋黨에 의한 사림정치질서와 탕평의 정치적 지향은 悖惡의 專橫정권 勢道정치의 전개와 함께 무너지고, 신분제 등 명분론적 사..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6) 그러면 이 시기, 안동 김문이 세도를 구축한 영조 말, 정조 초기에 벽파로서의 경주 김문의 정계 부침은 어떠하였는가, 경주김문은 왕가의 近戚 월성위가로 국왕들의 총신 權門勢家로 대대로 고위관료직을 역임하였음을 앞의 글에서 전술하였다. 그러나 경주 김문 門閥의 世道는 국왕의 ..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5) 영.정조의 탕평책은 결국 당색을 넘어서지 못하고 다시 정국을 붕당으로 분열하게 하는 조선왕조 정치사에 끝내 수용되지 못한 실패작이었다. 물론 이들이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붕당 타파를 주도하였지만, 그보다는 조선 후기에 당쟁 일색인 정국의 파행을 탕평정책으로, 붕당을 타..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4) 정조의 치세기간(1776-1800)은 격동의 시대로 조선의 전통적 질서가 동요하고 주자학이 지도이념으로서 한계를 드러내는 가운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으며, 외래 사상과 문화의 영향으로 전통사상과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정조는 휘하의 관료, 지식인들과 함께 조선사회가 ..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3) 그러나 영조는 재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당쟁 근절, 탕평책의 성공으로 왕권이 강화되고, 재상권이 약화되는 政況에서 자신의 학구열을 과시하는 過多한 경연 실시, 금주, 금욕, 사치 금지 등의 自我陶醉의 聖君的인 생활 태도를 보이며, 정국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 秋史 사랑채 2018.07.31
4) 家禍 -서론(2) 추사를 비롯한 그 가족들의 가화를 단도직입적으로 정리하자면 조선왕조사에서 가장 파행적으로 정국을 농단한 안동 김문의 ‘세도정치기’ 동안에 3차례의 안동김문에 의한 ‘추사 및 추사 일가 죽이기’이다.(안외순, <秋史 金正喜 家의 家禍와 윤상도 獄事>, 추사연구 4, p267) 그.. 秋史 사랑채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