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의 源泉: 文字香⦁書卷氣 (3)

clara jeon 2020. 3. 17. 17:39

‘觀’이란 마음 갈피 갈피의 지혜 눈이다. 격물치지의 읽기정신으로 마음 갈피마다 배어 스며든 문자의 향기는 지혜의 서권으로 갈무리되어 맑은 기의 마음의 窓으로 대상을 把捉한다.
    우리의 선인들은 “心으로 理로 사물의 본질을 꿰뚦어보는 以物觀物”로 삶의 고비에서의 실마리를 체득하여 삶살이에서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의 매듭을 풀어나갔다. 쉽게 부연하자면 책에서 읽은 글이 아집을 벗어난 내 말로, 글 속의 담긴 생각이 내 思想의 觀이 되어 ([오직 독서뿐], 정민, 김영사:파주, 2013,p123), 숙독한 책의 진정성이 내 삶에 主見, 堅持로 直道로 以行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황. 권필 선인의 <觀物>이란 시로, 試題를 아예 <관물>이라 하여 조선의 유학자들이 우주 만물상에 깃들여 있는 체득한 순환의 理致를 삶과 연관지어, 그에서의 깨달음으로 자신들의 性情 다스림을, 선비의 지고한 삶의 원천임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많고 많은 사물들 어데서 왔나
아득한 저 근원은 허망치 않네.
前賢의 興感處를 알고 싶은가
뜨락 풀과 어항 고기 자세히 보게.
(이황)

솔개 날고 고기 뛰는 태화 중에서
만물의 부침 속에 한 기운 녹네.
봄비 그칠 제면 뜨락 풀도 푸르니
이렇듯 생의로운 사람과 같네.
(권필)
(정민,[한시 미학 산책], p372 재인용)

위의 관물시들은 萬殊로 나뉘어져 百態를 연출하는 사물 저편의 一理를 늘 깨어 만나 투시하며, 주변 사물이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는 의미가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여, 물상을 지켜보던 사람의 마음에, 삶에 生意가 물오른다는 내용들로, 사물을 향한 관찰과 내면을 향한 관조가 있다(정민,[한시 미학 산책], p372-381 참고). 일개의 사물이 일개의 인간을 生意로 일깨울 수 있는 정신 심층부의 靈覺은 “만 권의 책”을 평심정기로 몰입한 마음 갈피 갈피의 지혜 눈, 즉 문자향 서권기로 把捉한 물상에 내재한 生意와 그를 관조한 인간의 영혼의 共鳴, 生趣이다. 古典은 옛 성현들의 삶의 궤적으로, 그들 혼줄의 이야기는 쓰고 싶어 쓴 글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 이 말을 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다간 의미가 없어 쓴, 생생하게 후대에 까지 살아([오직 독서뿐], 정민, 김영사:파주, 2013,p129), 후학들과 공명으로 들숨날숨으로 숨쉬기를 하고 있다. 이들 삶의 궤적에 세월의 향내의 숨결로 흐르는 문자향과 서권기, 萬卷의 책읽기로 예술인의 삶에서 有口無言, 暗黙的으로 피어내어야만 하는, 이 향기로운 기운은, 평심정기 박학독행으로 공부의 일가를 이룬,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그러나 伯牙破琴의 경지, 예술가 삶에 自然, 純粹, 絶體絶命이다.
    그러고 보면 추사가 그토록 자신의 제자의 작품, 실상은 우봉의 인품까지도 폄하하면서까지 아들 상우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는 “문자향. 서권기”에서의 문자의 향내, 책이 품어내는 氣의 含意를 헤아림, 一家를 이루어 山嵩海深 大家의 直道以行의 藝術家의 향내는 단지 人品과 學識으로 모듬 지울 수는 없지 않을까. “팔뚝 아래 309비를 갖추고,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며 구천구백구십구분까지 이르렀으나, 나머지 일분의 공부는 진실로 이루기가 어려우니 끝까지의 노력”한 추사 평생 배움의 길, 直道以行의 道正 道程에서의 연찬과 수련, 정신적 수양, 학술적 천착으로 성취한, 추사의 山嵩海深의 학예의 生意 生趣의 靈覺의 원천, 근원은 文字香. 書卷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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