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의 源泉: 叡智逸脫 (2)

clara jeon 2020. 3. 17. 17:21

   배움(erudition)은 인간에게 원초적인 본능으로, 태어나면부터 시작된 본능적인 배움은 깨달음을 주어 삶의 바른 길을 가르쳐주나, 그 깨달음은 상처를 주기도, 아물어 딱지(痂)로 새 삶 길의 징표가 되고, 깨달음 과정에서의 선각의 이탈, 예지적인 일탈은 필연적이다. 여기서의 일탈이란 부정적인 離脫을 의미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의 속성 즉 붓다나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 등의 노정에 보여지는 正道에서의 이탈로서 靜道, 正道로의 회귀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일탈이다(한준상,[生의 痂],p3-4,p25.26,미주 6).7)학지사,2009,서울). 즉 Michael Brenson의 "Healing in Time"에서 “회화는 치유의 약속을 가리키고 있다”의 다져지고 있는 치유란, 회화라는 예술 창작과정과 결실에서의 정서의 회복인 치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예 배움 과정, 성취의 그 시간들(in Time)에서 예지적인 일탈로 發起될 수 있는 치유(Healing)를 의미한다.
    추사는 조선후기 성리학적인 학예로 다져진 사대부의 삶에서 이탈한 예지일탈적인 삶을 堅持한 평생배움인이었다. 왕가의 근친인 경주김문의 출신성분으로 對面的으로 당대의 사대부들의 삶을 비판하지는 않았으나, 추사 삶의 歷程은 典型的적인 예지일탈이었다. 신분의 계층이 와해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라 하지만 오히려 와해의 징후로 더욱 견고하게 신분상의 계층을 엄중하게 단속하였을 당대에 추사의 배움의 길에 함께 한 이들, 중인들, 더구나 도성 출입까지도 금한 팔천민의 한 부류인 스님 등과의 소통은 분명 당시로서는 소외, 백안시되었을 이탈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추사의 졸기에서의 “때로는 혹시 거리낌 없는 바를 행했으나, 사람들이 자황(雌黃)하지 못하였다”의 기술이 이를 증언한다. 추사의 장년 이후의 유배는 “거리낌 없는 바를 행한” 예지적인 이탈, 일탈과 무관하지 않다고 필자는 사료한다. 인류의 역사 속 위인들의 족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예지일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늘 정해진 영역 또는 본래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에서 벗어나는 행위로, 무엇인가 표준적인 것에 대항하는 듯한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행동이나 행위, 즉 正道를 이탈하였다(한준상,[生의 痂],p4,p26,미주7)학지사,2009,서울). 추사의 거리낌 없는 이탈에 대해 당대의 사대부들은 자황하지 못하였다함은, 그 일탈의 정신세계의 뉘앙스는 이미 선각의 직도이행으로서 凡人으로서는 犯接 못 할 존립의 가치이었을 것이다. 더욱 소중한 意味深長은 이 identity는 추사 한 개인의 존립으로서 형성된 아우라가 아니라 추사와 함께 배움을 즐긴 이들이 비록 중인, 팔천민이었으나, 이들은 당대의 흐름을 혜안한 개명인들로 시대에 副應할 줄도, 그리고 미래를 개화할 수 있는 인재들, 필요한, 아름다운, 좋은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에 안동김문조차도 秋史派에게 감히 자황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추사의 “거리낌 없는” 정신의 세계는 탁류의 속세에서 물질세계에 갇혀 허우적 급급하는 虛虛로운 犯人들에게는 자신들의 물질세계를 붕괴할 조짐을 갖추고 있는 진선미의 靜道 . 正道의 경지로, 차라리 눈에 보이면 무력으로 대상을 처리할 수 있으련만, 자신들의 미약한 정신세계로는 처리할 수 없는, 될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안동김문을 비롯한 추사의 선각의 경지를 두려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추사의 정신세계에 대한 축출은 결국은 물질적인 무력 정권의 위세로서의 유배로의 축출이었다. 그러나 추사는 예지일탈의 배움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배움의 달인은 평범한 일상, 어떠한 障碍의 상황에서도 ‘성공의 지혜’를 발견하는 법을 터득하는 이들로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물질 속에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들로 자신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목표를 배움에서 찾아내어 이루어냄으로써 행복에 도달한 사람들이다(한준상,[生의 痂],p28,미주14)학지사,2009,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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