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小癡 許鍊의 가르침에서의 평생 동행의 모습(10)

clara jeon 2020. 3. 7. 17:54

    추사가 叡智逸脫의 탐구로 신구학문을 섭렵하여 강력한 진폭으로 당대의 문화에 일으킨 創新의 파장, 즉 조선 후기 교육. 예술계를 개명. 개화. 개혁 바람, 근대기의 “완당바람”은, 법고의 기틀이 薄弱, 貧弱함에서 그럴싸한 흉내내기, 눈요기감, 이미테이션, 표절 등으로 創出이 아닌 産出되어지는 현대 학예계의 병목적인 과도기에,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典範的인 波浪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아지나, 이는 학예의 路程에서 기본적으로 반드시 구축되어져야 하나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사람, 특히 청소년들이 살아갈 만한 미래지향적인 사회 시스템을 작금의 학예인들이 창출하지 못한다면, 교육의 失策으로 인성을 피폐하게 하여 사람을 돕지 아니하고, 사람을 헤치고, 사람과 자연의 생명까지도 손상시키는 죽음의 교육이 될 것이다.
    특히 추사의 교육적인 행보 중에 주지해야 할 先行은 중인 제자들의 잠재력을 실사구시의 학예의 탐구로의 문으로 開創하였다는 선각자의 혜안이었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발견하고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에게 책임감있는 전인적인 삶의 성취감을 창조하도록 유도하는 진선미의 실사구시, 잠재력에 신분의 차별, 서열화가 없음을 추사의 선각자적인 교육관은 혜안을 한 것이다. 작금의 교육은 실존에 필요하지도 않는, 숫자로 우열을 차별하는 비실용적인 실력을 조장하고 부유층에 유리한 방식으로 잠재력에도 순위를 매기고 있다([최고의 학교],테드 딘터 스미스 지음,정미나 역,예문아카이브,2019,p211).
    평생 배움의 여정. 도정에서 교육의 진실성은 무엇인가. 어제, 오늘 교육의 진실성 상실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 그 여파로 인하여 현재, 미래에 정신보다는 물질이 우선시되는 黃金萬能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톡톡히 치러야 할 그 값은 무엇인가. 작금의 교육은 학생 자신들의 영육을 담을 세상을 더 나은 삶으로 개선하게, 이러한 혁신을 위한 역량과 사고방식을 습득하게 하는, 자발적인 의욕으로 창조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여, 심지어 최상위권 학업 습득자들도 학교교육을 통해 머릿 속에 오래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교육 목적의 진실성을 상실하고 있다([최고의 학교],테드 딘터 스미스 지음,정미나 역,예문아카이브,2019, p12-13).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추사의 평생배움의 도정에서 摸索. 窮究, 진선미의 교육의 진실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필자의 앞의 글) 필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현대의 평생 교육관과 일맥상통하는 추사의 <실사구시설>. <인재설>. <적천리설>을 현대교육과 접목, 재정립함에 있다고 주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