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의 源泉: 文字香⦁書卷氣 (2)

clara jeon 2020. 3. 17. 17:34

   추사는 신분을 초월하여 제자를 양성하였다. 하지만 그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우선한다. 추사가 아들 商佑에게 보낸 서간문에서 又峰 趙熙龍을 폄하한 이유에는 우봉의 인품에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사는 상우에게 우봉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제자 우봉의 가슴에 못을 치고 있다. 왜 그토록 추사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없는 손끝으로만 그려지는 영혼이 희석된 許許한 기예를 경계하였을까? 추사가 아들 상우에게 차마 일러줄 수 없는 黙示的인 마음 갈피에 접어 둔 暗默의 깨달음, 함축의 언어들은 무엇일까?
    그러하다면 작금의 학예인들은 우봉의 그림에 대해 觀하여 추사의 폄하의 비평을 되새김질할 필요성이 있다. 우봉은 세 살 손아래 제자로 당대에 추사와 버금가는 書畵家였다. 그의 글씨는 추사의 글씨와 꼭 빼닮아, 안목이 부실한 세간인들은 스승과 제자의 서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어찌 보면 추사의 수제자였다고 볼 수 있다. 우봉의 梅畵圖는 당대의 최고의 명작이라고 회자되고 있었고 당대의 화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수집, 비평, 감식을 두루 섭렵하여 그에 걸맞는 부유층의 勢家들과 교류하였다(이경자, {壺山 趙熙龍 文人畫의 雅ㆍ俗 美學 硏究],p9.12, 각주 16참조). 더욱이 우봉은 1851년 추사가 王室典禮에 개입되어 북청 유배 될 때에는 추사와 연루되어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기도 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고 추사를 존경하며 극진하게 모셨다. 우봉이 추사와의 대면한 글 등을 보면 그가 추사의 학문을 推仰함이 哀切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사는 우봉의 서화들을 觀하여 폄하하였다.
    ‘觀’이란 그냥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은 思想을 들여다 보는 보이지 않는 속풀이의 見이다. 따라서 옛사람들은 그림을 보는 見이라 하지 않고 “읽는다”라 하였다. 즉 그려진 사물의 대상에서 작가의 觀의 사상을 읽는다는 것이다. 여기의 사상이란 불현듯 깨달음도 아니고 그 깨달음이 비록 잠시 심오함을 표출한다고 할지언정, 그는 평심정기 박학독행 격물치지에서 취한 수류화개의 자연 香氣가 모아진 氣가 아니므로 그를 思想 觀이라 할 수는 없다. 즉 치밀한 열정의 노력으로 대상을 觀하여 마음의 한 켜 한 켜 담겨진 페이지의 향기, 문자향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사상, 마음의 향내가 나는 서권의 기가 아니라는 것이, 추사가 우봉 그림을 觀한 소감이고 폄하이다. 즉 한 마디로 우봉이 그린 매화꽃은 향기가 나지 않는 종이 매화라는 것이다. 우봉의 그림은 감상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분칠한 화려한, 그러나 인위적인 손 끝에서의 흉내내기, 形似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도 동감이다. 감히 필자의 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우봉의 매화도는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다. 화면에 가득 피어있는 피어오르는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모두 “나는 꽃이다”이라고 작가의 기예의 과시 “재주의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 곳에는 화가의 사상을 읽을 수도, 감상자 또한 사유할 수도 없다. 아니 필요 없다. 단지 화면 가득 가득 분분한, 떠도는 매화일 뿐이다. 물론 우봉의 그림에 대한 비평이 추사가 추구하는 神似의 南宗文人畵 관점에서의 傾度된 폄하일 수 있으나, 그 이전에 우봉의 그림에는 문자의 향과 서권의 기, 화려하나 사치하지 않으며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는 儉而不陋의 절제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감상평이다.
송대의 이학자 邵雍은

무릇 관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理로써 보는 것이다. 천하의 물은 이를 담지 않은 것이 없고 性이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命 없는 것이 없다.

소옹은 눈으로 사물의 외피만을 보는 것을 以我觀物에, 心으로 理로 사물의 본질을 꿰뚦어보는 것을 以物觀物에 견주고 이물관물을 反觀이라 하여 물로써 물을 보니 그 사이에는 我가 개재될 수 없다고 하였다([한시 미학 산책], 정민, 솔출판사,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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