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의 源泉 : 法古創新 (2)

clara jeon 2020. 4. 13. 17:29

    추사의 그림은 옛 맛이 심오하게 침윤되어 있다. 그래 깊숙히 고전적이다, 허나 동시에 현대적인 구성과 묘사와 필체의 독특한 미감으로 넓게 아우르는 개성미가 돋보여 오랜 시간 감상자를, 눈길을 몰입하게 한다. 이어 한 작품임에도 파노라마로 마음의 행간과 행간을 이어 餘音의 佳境, 묘경을 펼쳐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思惟가 現示적이지만은 않다는, 과거 현재 더 나아가 미래를 읽어내는 通時性의 함의로 표출될 수 있는 志意이다. 추사의 작품 속에 내포, 함의되어 있는 通時的인 志意, 즉 법고창신의 지의는 추사의 작품 속에서 추사의 자존과 실존의 신사로 고결한 삶의 의지의 아우라로 형상화 되었다. 다시 말해 이는 추사 그림이 주는 감동의 핵심으로, 추사가 평생을 걸쳐 추구하던 법고창신의 묘경을 생생한 실존적 경험을 통해서 自得하고, 이를 全人格的인 차원에서 바로 법고와 창신의 모순적 對立極을 그 중심에서 초극한 뒤 이를 不二의 묘경으로 통합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추사와 그의 시대],<추사 그림의 법고창신의 묘경>-<세한도>와 불이란도>를 중심으로, 강관식, p210).
    추사가 법고와 창신의 모순적 대립을 초극하여 不二의 묘경을 통합한 작품들, 특히 중년 이후의 서화작들에는 유배 등의 험난하기만 한 삶의 苦鬪의 실존에서, 직도이행의 학예의 연찬으로서, 조선 선비로서의 전인적인 삶을 상실하지 않으려 하는 善에 대한 불굴의 의지, 삶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애정, 소중함이 고결하게 그려져 있다. 추사 학예 평생의 노정에는 철저한 법고의 격물치지로 자신과 학예에 대한 조선 선비의 전인적인 정체성을 삶에 중심 骨髓에 직립, 直道로 水流花開 흐르고 있다. <歲寒圖>, <梣溪>, <溪山無盡>, <史野>, <大烹豆腐>, <不二禪蘭圖>, <板殿> 등, 이외의 다수의 서화작에는 추사의 拙과 虛의 경지, ‘不計工拙’ 경지, 그러면서도 단지 허허로움이 아닌 인간 삶에 대한 사랑을 마음의 끈으로, 삶에서의 인간과의 情理에서의 진솔한 의미와 가치로 수류화개 하게 흐르고 있으며, 또한 추사는 이를 一貫, 本領으로 견지하고 있다. 특히 <세한도>는 절해고도 원악지에 위리안치된 추사의 추운 심리적 情操의 神似이다. 그러나 <세한도>의 진정한 의미는 오히려 그와 같은 계기(유배, 歲寒)와 인연을 통해서, 추사가 ‘歲寒 後凋’를 되새기고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관계와 情理의 진정한 의미를 실존적으로 성찰하고자 했던([추사와 그의 시대],<추사 그림의 법고창신의 묘경>-<세한도>와 불이란도>를 중심으로, 강관식, p223) 추사의 人間美가 自畵的으로 절절하게 그려진 상징에 있다. 추사의 여타의 詩書畵에서, 작품에 걸맞춤의 제발을 보면 추사의 인품이 그대로 白日下에 드러나고 있는데, 추사의 주변의 인물, 물상들에 대한 溫氣스런 情操가 俗氣 아니하게 濕潤되어 있다. 인간사의 정감을 눈에 스치는 한 풍경인양 俗套나 套式로가 아닌 고심하여 법고의 원전을 찾아 풍격있게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俗套나 套式로가 아닌, 古法에 致知의 典據가 철저하면서도, 篆. 隸. 楷. 行. 草書를 한 작품 안에 法道로서 구사한 아방가르드(avant-garde)적인 추사의 글씨가, 동시대의 사람들의 눈에는 법도의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어 ‘怪奇’하다고까지 폄하되기도 하였다. 추사 역시 자신의 작품들이 ‘怪’하게 되어가는 듯한 곤혹스러움을

요구해온 서체는 본시 처음부터 일정한 법칙이 없고 붓이 팔목을 따라 변하여 怪와 氣가 섞여 나와서 이것이 今體인지 古體인지 나 역시 알지 못하며 보는 사람들이 비웃건 꾸지람하건 그것은 그들에게 달린 것이외다. 해명해서 조롱을 면할 수도 없거니와 怪하지 않으면 글씨가 되지 않는 걸 어떡하나요.(전집 권5. 어떤 이에게)

전. 예. 해. 행. 초서를 한 작품 안에 法道로서 구사한 아방가르드적인 자신의 글씨, 한 걸음 더, 혼의 세계로 깊숙하게 들어가 인간의 情理를 신사의 아우라로 상징한 영혼의 氣를, 추사인들 글씨가 그리 그려짐에 어찌 해명할 수 있었겠는가. 추사는 儒學이 삶의 지지기반인 조선선비의 정체성으로 평상의 삶이나 예술관에서 ‘怪’스러움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더러 협오하였다. 그러한 추사가 항간에서 그의 서체가 “怪奇 스럽다”는 비웃는, 꾸지람하는 비평을 들었을 때의 당혹감, 추사는 이 폄하를 감내하기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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