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小癡 許鍊의 가르침에서의 평생 동행의 모습(5)

clara jeon 2020. 3. 6. 18:44

    추사는 소치에게 그림 그리기, 시 읊기, 글씨 연습 등을 매일 가르쳐 소치를 데리고 지내는 동안 외롭지 않았으니, 육지 길 천 리 바다 길 천 리를 건너 온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온 정성을 다하였다. 추사 평생에 가장 사랑한 제자가 소치였고 그로 인해 추사가 사람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추사로서는 소치를 편애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백척간두의 삶을 함께 동행한, 일상의 수발을 들며 벗이 되어 주며, 필요한 물품을 구해 주는등의 사제간의 의리, 마음의 사랑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유홍준[완당평전]1,p366.377). 추사는 적거지 가시울타리 집에서 자신과 함께 지내는 허련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을 초의스님에게, 이러한 마음, 소치와 한 식구로 지내는 즐거움을 여실히 드러낸 마음을

허치는 날마다 곁에 있으면서 古畫 名帖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건지 지난 겨울에 비하면 또 몇 格이 자랐다네. 사로 하여금 參證 못하게 된 것이 한이로세. 현재 오취 佛의 眞影이 실린 수십 책이 있으니 사가 만약 그것을 보면 반드시 크게 욕심을 낼 걸세. 허치와 더불어 나날이 마주 앉아 펴 보곤 하니 이 즐거움이 어찌 다하리오. 경탄하여 마지않는다네.([완당전집]제5권,書牘, 與草衣 其十八, p178-179)

    소치의 화격이 날로 蒼蒼해질 무렵, 뜻밖에 소치의 仲父의 부음이 날아와 4개월 만에 소치는 육지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후 1843년 6월 새 제주목사 이용현이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길목에 기다렸다가 이용현과 함께 제주로 입도, 목사의 막하에 있으면서 끊일 새 없이 대정 유배지를 왕래하며 추사의 수발을 들었다. 적소에서 왕성한 독서열로 고전을 연구하고 학계의 새로운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스승의 학문의 심화를 위하여 소치는 제주의 목사관에 머물면서 추사가 필요로 하는 온갖 문물을 구하며 東奔西走 무시로 도우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44년 봄, 추사 유배의 몸에 손발이 되어 주어 고단한 세한의 삶을 온기로 덥혀주던 소치가 제주 목사관을 떠나겠다고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추사는 서화의 기량이 至高한 경지에 닿은 소치에게 문무를 겸비한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신관호를 소개해 주면

세상에 자네의 능력을 알아볼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네. 듣자니 신헌 공이 우수사가 됐다고 하네. 나와는 世交가 있네. 문장의 솜씨가 높고 인품도 고상하니 찾아가서 뵙게([소치실록],유홍준[완당평전],재인용,p391)

그리고 서운한 마음을 시 한 수에 담아 신헌에게 소치 허련을 보내는데 소개하며 부탁하는 이 시의 행간과 행간의 함의가 심오하다.

보랏빛 제비 날아와 단청한 들보를 돌면서
뜻깊은 사실을 말하는지 그 소리 낭랑하여라.
수없이 지껄여도 알아듣는 사람 없는데
또다시 꾀꼬릴 좇아 남의 담장 넘어가네.

그리고 내밀한 이 시의 뜻을 헤아려 부연하는데, 이 부기 또한 함의가 難解하다.

이 시는 뜻이 매우 심오하니, 시험 삼아 연화세계를 올라가면, 혹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소치실록],유홍준[완당평전],재인용,p391)

“혹 아는 사람”임을 이미 안 추사의 혜안대로 소치의 소매 속에서 꺼내 보이는 이 시를 찬찬히 읽은 신헌(관호)는 염화미소로 빙그레 웃었다고 한다. 보랏빛 제비 소치는 자신의 예술의 낭랑한 경지를 알아듣는 사람인 신헌, 남의 담장을 넘어, 여수 우수영 해남 관사에 기거, 신헌과 함께 시를 짓고 나누고 그림을 그리며, 전라우수사 신헌 막하에서 일을 하며 여전히 제주로 배편이 있으며 끊임없이 편지를 드리며 이웃에 계신 듯이 모셨다. 한 편 정성을 다해 소치를 보살피는 신헌에게 추사는 극진한 예를 갖춘 서간을 보내는데, 門客 소치에게 珠履를 신겨주어 감사하며 소치 그림의 화격을 상찬하나, 행간의 함축은 소치를 더욱 비호해 달라는 속내가 엿보이는 글이다. 일부를 발췌한다.

畏塗요 窮途인 이 곳에까지, 세속의 투식을 탈피하여 古誼를 숭상하시는 令監이 아니라면 어떻게 능히 바다 건너까지 사람을 보내서 정성스레 위문해주시는 것이 이와같이 진지하고 정중할 수 있겠습니까,

바다 구름 한 가닥은 우리 두 사람의 호흡을 서로 연접시킬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許癡는 아직도 그곳에 있습니까? 그는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그의 畫法은 종래 우리 나라 사람들의 고루한 기습을 떨어버렸으니, 압록강 동쪽에는 이만한 작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가 다행히 珠履의 끝에 의탁하여 후하신 비호를 입고 있으니, 영감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사람을 알아주겠습니까. 그 또한 제자리를 얻은 것입니다.([완당전집]제2권,書牘, 與申威堂觀浩,其一,p183-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