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小癡 許鍊의 가르침에서의 평생 동행의 모습(4)

clara jeon 2020. 3. 6. 18:11

   소치 허련이 월성위궁에서 추사에게 서화를 지도받은 기간은 1838년 여름부터 1840년 여름까지로,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예림갑을록] 기록에 보이듯이 본격적인 2년 동안의 여항문인들과의 동문수학은, [공재화첩] [고씨화보]에서 화격의 의미는 깨달았으나, 이를 실상으로 일깨워주는 스승이 없어 임모만 하던 형사의 陳腐性에서 탈피, 소치의 개성이 깃든 그림을 그리게 된다. 더욱이 추사는 문하의 제자 중 자신의 사랑채에서 기거를 하는 貧寒한 제반 환경으로 인한 열등함으로 수학할 수 밖에 없었을, 동료들 중에 연장자인 소치를 년소한 제자들 앞에서 소치의 그림을 절찬, 허련이 권문세가나 거부인 중인 동료들에게 銷沈하지 않도록 意氣를 북돋아 주었다.(김상엽, 成均館大學校 大學院,[2002] 국내박사[소치 허련의 생애와 회화활동 연구],p19) 월성위궁 시기에 추사는 곤궁한 허련에게 서화에 필요한 물질적인 지원을 하였을 것이고, 더욱이 추사의 상찬은 이미 소치의 畵名이 장안에 膾炙되게 하였다. 소치는 당대 서화가의 최고봉인 추사 김정희를 스승으로 모신 자긍심으로 法-雅-妙-神의 화격 경지를 다듬는 문인화가의 畵道를 확고하게 정립하게 된다.
    그러나 소치의 화격을 문자향 서권기의 神韻으로 일취월장하게 한 월성위궁에서의 서화 수련은 1840년 윤상도 옥사의 연루로 불현듯 추사가 제주 절도 위리안치 유배, 그 해 여름 거둬진다. 예산 추사 향저에서 스승의 압송을 목격한 소치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여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앞날의 길을 잃은 막막함으로 방황하며 주유하게 된다(김정호,[小癡 許鍊 文人畵의 美學的 硏究],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2011] [국내석사]). 낙후된 섬 진도에서 한양이라는 낯선 외지에서 孑孑單身으로 오로지 스승 추사만 의지가지한 허련에게, 왕의 내척 권문세가로서 권력의 정점 추사 김정희가 포승줄에 엮이어 죄인으로 墜落, 한밤중에 의금부로 압송되는 스승의 百尺竿頭는 “엄청난 두려움” 이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공포, 소치 허련의 삶 자체의 몰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련의 방황과 주유를 길지 않게 매듭지어 준 이 역시 스승인 추사 김정희였다. 필자는 허련이 몇 개월의 마음을 잡지 못한 방황의 시간들을 걸으며 자신이 歸着할 곳은 정신적인 지주, 예인으로서 가야하는 길을 전수한 스승 추사 김정희임뿐임을 깨달았을 것이라 추정한다. 몰락한 양반의 후예이지만 허련의 골수에는 사대부 선비의 儒者的인 문인지향의 自尊的 기질이 있었다. 폐쇄된 궁벽한 섬에서 분출하지 못한 허련의 가두어진 문기를 혜안으로 꿰뚫어 小痴라는 호를 내리며 자신의 삶에 분수령이 되어 주신, 자신의 닫혀진 心象의 문을 열어 그가 원하던 그림의 세계로 인도한, 비로소 사람다운 人道. 畵道의 길을 열어 준 평생의 은인 추사에게 소치는 回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방황의 시기에 허련이 월성위궁에 기거하면서 학연을 맺은 추사 문하의 평생지기들인 권문세도의 권돈인 등의 학예인, 조희룡 등 여항문인들의 物心兩面 보살핌 또한, 허련의 추스리지 못하는 삶을 일으켜 세워 준 은인들이 아닐까.
    소치는 1941년 2월, 제주 대정 가시울타리 안의 추사 김정희를 찾아 뵙는다. 그리고 서화수업을 잇는데, 반년 사이에 가세가 몰락한 죄인의 신세로 한양 월성위궁을 떠나 절해고도 제주 초가의 위리안치 謫所에서 가르치는 추사나 배우는 소치의 心思가 어떠하였으리라고는, 필자 또한 소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소치는 추사가 해배되는 1847년까지 햇수로 9여 년 간의 유배기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보통 7일에서 10일 동안 거룻배, 바람, 하늘 뜻에 의지, 망망대해 험난한 뱃길에 영혼을 담아, 歲寒의 시절을 絶海孤島의 恨으로 목숨줄을 지탱하고 있는 스승을 찾아가 서화를 다듬는다. 소치가 훗날에 신관호나 권돈인의 주선으로 헌종을 배알하고 총애를 입게 되는 背後에는 스승의 가시울타리 삶을 함께 보듬어, 섬 출신 鄕班 허련의 삶에서 문인화가 소치의 삶으로 거듭나게 하여준 은혜에 보답하는, 이러한 지극정성을 다하여 스승을 모신 소치 허련의 갸륵한 행적이 귀감이 되었다고 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