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歲寒圖>에 나타난 사제간의 모습(4)

clara jeon 2020. 1. 4. 17:08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진실하고 절실하셨습니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득을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 속에서 초연히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작은 마음에 스스로 하지 않을래야 아니할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서책은, 비유컨대 몸을 깨끗이 지니는 선비와 같습니다. 결국 어지러운 권세와 걸맞지 않는 까닭에 저절로 맑고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간 것뿐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겠습니까? 이번 使行 길에 이 그림을 가지고 燕京에 들어가 표구를 해서 옛 知己 분들께 두루 보이고 詩文을 청하고자 합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제가 참으로 속세를 벗어나고 세상의 권세와 이득을 초월한 거처럼 여기는 것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과당하신 말씀입니다(오주석, 1999).

“悲夫!” 우선은 추사의 속내를 세한을 흐르는 눈물로 讀畫하였다. 절망하는 의지 꺽인 스승은 이미 스승의 자격이 없는 죽은 자. 至難한 역경을 침투, 굴하지 않는 대쪽의 직도이행 스승 추사 희망, 그를 닮은 우선은 開眼한 미래의 길에 추사체의 강철의 이미지로 삶을 邁進, 당대의 명성이 고고한 역관, 당대의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벼슬로 명예로운 승승장구를 하였다. 이상적은 단지 역관의 富와 종신토록 知中樞府事의 벼슬아치의 무리에 머물었을까. 필자는 구한말의 개안, 개혁의 바람, 완당의 바람에 우선의 바람 또한 가늠한다. 유능한 스승은 유능한 인재를 알아 읽고 그들이 이 시대의 무엇을 할 지를 공명하고 그 스승은 시대의 변화를 가르치고 그의 제자는 시대를 개혁한다.
      이상적은 위의 다짐을 지켜, 이듬해 10월 역관으로 貢使를 수행하기 위하여 북경으로 떠나 당대의 名流文士 16인들에게 [세한도]를 보이고, 추사의 淸節高風과 사제간의 의리를 嘆美激賞하며 지은 그들의 詩文을 받아 이를 10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로 엮어 귀국, 곧바로 다시 海濤萬里 제주도 추사에게 보여드려, 이 온정에 넘치는 시권(詩卷)을 읽는 추사로 하여금 感喜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오주석, 1999. 유승국, 2004). 이처럼 이 그림에 담긴 추사의 마음 이야기는 국경 너머의 타인들에게 까지 읽혀짐으로서, 추사는 絶島孤島에서의 외부와의 단절을 극복하게 되고, 이러한 창작행위들이 10여년의 푸른 바다 넓은 하늘에 한스러움만 끝없이 사무치는 시련의 나날의 위리안치의 謫所를 문화예술의 장으로 소통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藕船은 [세한도] 이후, 추사가 해배된 후에도 [세한도]의 ‘장무상망’ 朱文方印 遊印 印文이 지금까지도 그 선명함이 여전하듯이, 2천 년전 중국 漢代의 막새기와의 銘文,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 바라는 스승을, 사랑하는 맘으로 사제 간의 도리로 지성스럽게 추사의 수발을 들었다.
      다음 간찰에는 그 마음이 스며 남아있다. 전문을 옮긴 서간문에서 해배 이후 청계 관악산 아래 자락 과지초당에서의 곤궁한 삶살이를, 藕船이 변함없이 수발한 흔적과 우선을 향한 추사의 생각(愛)을 읽을 수 있는데 서정적인 마음 글이 아름답다.

赤道가 반듯해지자 비로소 봄 뜻이 무르익음을 깨닫겠구료. 문을 열고 바라보니 마을 버들은 하늘거리고 淸溪 冠岳 두 골짝의 산 기운도 또한 노인에게 거슬림을 주지 않으니 말이요.
季方은 그 사이에 잘 돌아왔으며 湯씨 顧씨는 둘이 다 원만하여 늙은 눈으로 하여금 金篦를 만나 죽음에 가까운 연령으로 朝聞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게 되었는지요? 근래에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지니 가련만 하외다.
마침 남쪽 차를 얻었으므로 이편에 약간을 나눠 보내는데 먼저번 것에 비교하여 더욱 나은 것 같소. 계씨의 행장에도 이 등속을 가지고 왔는지요? 계씨의 서신에는 들음직한 것이 있을 줄로 생각되는데 과연 어떻게 되었지요? 무슨 적확한 것을 얻어 왔는지 모르겠소. 행여 궁금증을 깨뜨려 주셨으면 하오.
세상은 여전하여 남쪽 상인은 구애가 없다는데 황하의 남북에는 대단히 시끄럽다니 이건 또 어쩐 일이지요? 온 蜀땅은 이미 북쪽의 소유가 아니라 하니 그렇다고 하던가? 우선 뒤로 미루고 불선([완당전집],書牘,<與李郵船尙迪>,其四,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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