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歲寒圖>에 나타난 사제간의 모습(5)

clara jeon 2020. 1. 4. 17:09

이 서찰은 1852년 8월 북청 유배 해배 후, 청계산 옥녀봉 남쪽 자락 선친의 묘소가 뒷산에 자리하고 있는 과지초당 “푸른 이끼 낡은 집”에 삶의 터전을 기거를 정하고, 처연한 마음을 수습하고선 우선에게 그 마음을 담담하게 보낸 글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추사는 우선과 그간 차를 서로 나눔을 하고 있었고, 藕船에게 나라 밖 소식을 전해 들으며 세상과의 소통을 하고 있었다. 연경에 갈 기회가 많은 譯官 우선 이상적, 추재 조수삼, 대산 오창렬, 소당 김석준, 역매 오경석 등은 추사의 애제자로 추사가 연경학계와 계속 교류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어, 추사는 이들 인편이 있을 때마다 편지와 선물과 학예 자료를 보냈으며, 추사가 열어놓은 이 길로 수많은 학예인, 자하 신위, 이재 권돈인, 동리 김경연, 황산 김유근, 운석 조인영, 운경 조용진, 육교 이조묵, 산천 김명희 등은 추사 못지않게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고 추사가 미처 만나지 못한 학자들을 만나며 그 교류의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유홍준,[완당평전]1,p104). 평생토록 열정적이었던 추사의 평생배움 길은 연경학계와의 끊임없는 교류를 이어 준 이들 역관들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秋史 金正喜 硏究-淸朝文化 東傳의 硏究]에서 후치츠카 치카시는 추사와 청조 학예인, 옹방강, 섭지선, 옹수곤 등과 주고받은 문물을 일일하게 기록하였는데 그 규모가 방대하여 교통이 실로 험한 시절에 이들 역관들의 노고가 어떠하였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 특히 [완당전집], 書牘편을 보면 이들 역관 중 추사는 유독 우선 이상적에게 정감어린 글과 사적인 부탁을 많이 하고 있어, 한양에서 연경으로 연경에서 한양으로 보낸 책. 서화작품. 탁본. 붓. 종이. 기타의 선물들, 방대한 문물 거의 다를 우선이 수행하였다고 추단할 수 있다. 절해고도 위리안치의 추운시절 추사, 그리고 “悲夫”의 스승을 변함없는 바라지 窓으로 비쳐주는 우선의 ‘長毋相忘’, 추사와 우선, 이들은 스승과 제자 이전에 인간과 인간과의 情理, 情操를 득음의 경지로 서로의 마음을 知音之友한 평생배움의 천리 길을 동행한 伯牙와 鍾子期였다.
      평생지기 스승 추사가 1856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나자, 伯牙絶絃의 심혼으로 우선은 <묵란>과 <세한도>에 담겨준 스승의 먹자취를 애도하였다.

知己平生存水墨 수묵화는 나의 평생지기였네
素心蘭又歲寒松 흰 꽃심의 난꽃과 추운시절의 소나무.(필자 역: 오주헌, 1999 참고)

그리고 哀痛함을 <奉輓金秋史侍郞>시에 “선생의 은혜 갚지 못함을” 愛戀, 痛哭하였다.

무덥고 황량한 남녘에서 10년 귀양살이 마치고 돌아오시더니
북쪽 바닷가에서 풍상을 견디며 더욱 노쇠해지셨네.
극치를 이룬 서법은 秦漢의 위에 있고
그림이 宋元에 핍진함을 누가 알까.
(눈물이) 동이 엎을 원한을 끝내 씻지 못하고
말년에는 마음이 타고 남은 재 같았네.
선생의 은혜 갚지 못함을 통곡하노라.
세상에선 소동파라 일컬어진 특이한 재주이셨네.

강가에서 초췌한 몰골로 부용을 캤고
다시는 돌아와 長樂鐘 소리를 듣지 못했네,.....
명망이 높으면 하늘이 시기하고
재주가 크면 세상에 용납되기 어렵다네.
평생지기의 먹자취만 남았으니
素心蘭과 歲寒松.

이 시를 그려보면 藕船은 제자로서 스승의 일생에 담긴 백척간두 풍상의 鬱憤 응어리를 깊이 同病相憐 知音하고, 그려지는 모든 소리에 동행, 추사에게 맺힌 恨의 心象들을 풀어내어 주는 鍾子期였다. 세한의 시절 의지가지인 知友의 성글어지지 않는 尊崇은 추사의 처신을 일편으로 직도이행 추진, 그의 純情. 純正한 명작들, 특히 [세한도]는 당대 藕船 李尙迪은 물론 작금의 후학들에게도 “진실하고 절실”한 공명감의 파장을 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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