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歲寒圖>에 나타난 사제간의 모습(2)

clara jeon 2020. 1. 4. 17:03

그 반증, [세한도] 발문에 언급되는 『문편』이라는 책은 자그마치 총 120권, 79책이고, 이외에도 이상적은 스승의 학문과 예술 탐구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다(유홍준, 2002). 絶海孤島 험난한 파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속세를 넘어 와 추사의 눈물에 읽혀지는 수 백권의 서적, 소나무 잣나무의 늘 푸르른 一片丹心의 고마움이 추운 유배인이라는 恨의 감성을 자극, 추사로 하여금 [세한도]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動機誘發, 창조케 하였던 것이다. 사랑이란 인간에 대한 존중에 들숨날숨, 생명력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정치적 감정]-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 마사 누스바움, 박용준 역, 굴항아리:파주, 2019, p37).
      藕船은 추사라는 인간상을 直道以行으로 尊崇, 자신의 스승, 노송으로 세우고 평생배움의 바라지 窓으로 비추어, 스승 추사에게도 제자인 자신에게도 삶의 새순이 돋게 한 ‘長毋相忘’ 鍾子期이었다. 스승의 능력과 명성이 政敵들의 중상모략으로 매몰되어 버린 후, 추사가 험준한 산에 있거나 풍랑 이는 바다를 마주 선 백척간두에 있거나, 삶에서 읽히는 들리는 모든 소리에 동행, 추사의 恨 맺힘, 內在한 心象들을 풀어내어 주는, 그에 따르는 시련으로 인한 풍상의 鬱憤 응어리를 同病相憐 득음하는 知音之友였다. 추사는 세상 밖으로 축출되다시피 한 절해고도 추운시절 “悲夫”의 고독, 恨을 변함없는 바라지 窓으로 비쳐 주는 우선에게 집 한 채,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 神似, 문자향 서권기의 격조와 문기로 ‘長毋相忘’ 새겨 주었다. 秋史와 藕船, 이들은 스승과 제자 이전에 서로의 마음을 지음한 지우로 득음의 경지로 평생의 천리를 동행한 伯牙와 鍾子期였다. [歲寒圖]에서의 추사와 우선의 ‘長毋相忘’은 실로 9999을 이루어내는 노력으로 나머지 일분을 서로의 至誠感天으로 다가 갈 수 밖에 없는 實事求是, 適千里 동행의 신비한 實在 實存이다.
      이 그림에 보이는 바와 같이 그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여 네 그루 송백을 그려 [歲寒圖]라 題하고 藕船是賞 秋史라고 署하였고, 또 이를 해설하는 발문은 추사체와는 달리 格紙에 일점일획도 방심함이 없는 그 端正謹嚴한 筆致로, 그림과 함께 더욱 굳세고 힘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감을 느끼게 한다(유승국, 2004). 추사는 제자에게 스승으로서 위리안치 제주 유배의 삶살이를 가감없이 갈필의 흐름으로 칼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의 虛妄, 無相을 자신의 처지에 연민은 어디에도 드러냄 없이 오롯한 실존으로 예리하게 꿰뚫고 있다.
      겨울바람이 휩쓸고 있는 허황한 허공과 추사만이 서 있었을 절해고도의 땅에, [세한도]를, ‘우선시상’ ‘완당’, 그리고 주문방인 ‘완당’를 눕히고 세우고, 추사는 자신의 心魂을 마른 붓끝으로 날렸다. 절해고도 허망한 제주의 땅, 그러나 그 파고의 백척간두에 굳건히 발을 디뎌야 하는, 아니 이미 딛고 있는 ‘일점일획도 방심함이 없는’ 스승의 모습을 사랑하는 제자 우선에게 단아한 묵선의 흐름에 골수를, 추사의 자존을 暗示 “歲寒圖, 藕船是賞 阮堂”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추사는 마음을 毋固, 세한에 날리던 마음을 화지에 方眼으로 바로 세우고 벼루에 맑은 물을 붓고, 다시 먹을 갈고, 마른 붓에 흠뻑 스승의 사랑을 적셨다. 일점일획의 방심함이 없는 엄정한 楷書體 長文의 畵跋에 자신이 알려고 하는 것, 자신을 다스리는 것, 자신을 바치는 것([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조벽,해냄:서울,p124,2012)을 추사는 伯牙絶絃의 의지로 그림과 글씨를 알아 읽을 명민한 제자 우선에게 백아의 神似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세한도]의 발문은 사제의 道理가 참으로 정겨우면서도 그 深意, 決意가 ‘長毋相忘’하다. 전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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