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師弟間의 道理『藝林甲乙錄』에 나타난 스승의 모습(6)

clara jeon 2019. 12. 26. 17:33

      후학인 우리들은 추사의 적천리 지극정성의 스승의 도리로서, 현대 교육의 병폐로 참교육의 진실성에서 소외된, 그러나 참 삶을 배우고자하는 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의 터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교육풍토에서 과연 교사들에게 적천리적인 스승상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입시위주의 교육의 현상황, 교사-학생-학부모의 관계는 야박하다. 교사는 가르침의 권위자나 고급지식의 담지자로서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서비스맨, 안내자, 보조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감정 노동자, 학생부종합전형의 도입으로 생활기록부를 조목조목 기록해야 하는 기록 노동자, 더욱이 학교폭력, 가정폭력 심지어 아동학대까지에 개입 상담 해결해야하는 교사 개인의 삶을 옥죄고 있는 실정이다([한겨레], 2019-12-5, 전종호, <교사의 삶과 입시개선의 방향>).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도병훈은 같은 글에서 (도병훈, [대안미술공간 소나무,] <학교 폭력과 예술교육의 중요성>,등록2012년 1월 14일) 최근 3년 동안 전국 초등학생 860여명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해오면서 면담조사 한 결과, 먼저 우울감은 활동기간 내내 꾸준히 낮아져 3년이 지났을 땐 처음의 60% 수준까지 떨어졌으며, 반면 친사회적인 성향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3년 째 그 효과가 눈에 띄게 높아졌으며, 이런 결과는 예술교육이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학교생활 적응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전인교육 문제 등의 교육의 침체를 유발하는, 표준화 위주로 인간의 정서까지도 표준화하려하는 기존의 전통교육의 병폐, 인간의 靈性은 시험으로 표준화할 수 없는 聖域이다. 서로 배우기 위해 한데 모인 眞善美한 삶을 위한 공동체라면 뭐든 학교다([학교혁명],켄 로빈슨 지음, 정미나 옮김, 21시기북스: 파주),2017,p13). 박자가 맞는 서너 명이 모여 작은 모임을 만들면 하나의 새로운 문화 운동 공간을 너끈히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창의력을 개발해 가는 것이 개인으로 부터 인지되어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조혜정,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아이 를거부하는 사회>,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2002,p.201), 14인의 예림 동호인들이 완당바람의 주역으로 조선후기의 말류의 구태의연한 학예문화에 파장을 일으켰다면, 작금의 '장기적 비전'도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10명 중 6명의 불만을 解消시키는 방안은 ‘박자가 맞는 서너 명이 모여 작은 모임’부터가 始發일 것이다. 200여 년 전에 이미 이 상황을 내다 본 추사에게 후학들은 참으로 빚진 학예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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