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師弟間의 道理『藝林甲乙錄』에 나타난 스승의 모습(3)

clara jeon 2019. 12. 26. 17:18

필자는 32세의 연장자로부터 13세의 어린나이의 다양한 연령층 학생들의 모습이 상상, 짐작이 된다. 나이가 든 학생은 나이 값을, 어린 학생은 학동 초자로, 교실은 긴장감이 자욱하여 학생들이 제 실력을 발휘나 했을까. 추사는 제자들의 이러한 심상을 면모를 익히 파악하였는지 그의 書評語는 촌철살인으로 예리하기도 하지만 그 날카로움으로 상처를 입어 기가 죽었을 학생을 어루만져주는 자상한 여유로움이 깃든 유머도 멋지다. 유재소에게 재기가 거리낌 없이 발휘되었으나 미숙하니, 다만 옛사람의 법식으로 글씨와 글자를 막론하고 실제적인 데에 입각하게 되면 그대는 옛사람의 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김계술의 “해서는 10년 전 모양 그대로여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으니...”하였으나, 행서와 초서에 대해서는 노력하여 기존의 습관을 버리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유상에게는 매양 붓을 대는 곳마다, 즉 글씨 모두가 두서가 없다 하셨으니 당사자 유상은 어린 학동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을 것이나, 붓의 놀림이 자못 뛰어나니 그 실력에 옛법을 알고 있는 대가의 지도를 받으면 정진될 것이라고 역시 앞으로의 길을 제시하고 있어, 아마 추사는 유상에게 옛 법으로 쓴 書冊을 추천해주었을 것이다. 수제자, 자신보다도 뛰어나기를 바라는 靑出於藍 靑於藍 의미, 古藍에게는 ‘法氣’라 인정은 하면서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 더욱 가혹한 서평을 하고 있다. 서두에 칭찬을 해놓고 본론에서는 송곳으로 치르는 듯 예리한 비평을 하고 마무리에 다시 상등이라고, 앞의 ‘법기’로 확증해주는 추사의 혜안은 적천리이다. 추사의 인재를 가리는 눈을 的確하여 고람은 재주도 빼어났지만 인물도 준수하고 겸손하여 사람들로부터 아낌과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스승 추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서화를 연마하여 시. 서. 화 모두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 비록 성인이 되어서는 藥房을 차려 생계를 유지한 중인이었으나, 그의 본령인 신분을 초월한 시서화인지라 추사가 당시 주장했던 문자향 서권기의 문인화 길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음은 물론, 더욱이 법기있는 고전적인 중후함과 근대적인 세련미가 흔연히 조화로운 확고한 개성을 보여준 예. 전서로, 추사가 이룩하지 못한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루어내었다.(유홍준,[완당평전]2, p695-698)
화루 8인에 대한 畵評으로 화제는 ‘秋山深處’ ‘千里追懷’로 이를 소재로 半切 크기의 축으로 그린 것 같은 데, 추사는 등수를 매기며 그의 화론으로 평을 하였다. 늘 자상함과 함께 극도의 예리함의 금강안 혹리수의 추사의 화평을 실제의 그림과 함께 서술한다. 前述과 같이 [완당평전]1권, p305-313의 서술을 근거로 필자의 소견을 添加한다.

전기:쓸쓸하고 간략하고 담박하여 자못 원나라 사람의 풍치를 갖추었다. 그러나 요즈음에 갈필 쓰기를 좋아하는 이는 石濤와 南田만한 사람이 없으니, 다시 이 두 사람을 따라서 배우면 가히 문인화의 정수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요, 한갓 그 껍데기만 취한다면 누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는가.
유숙:그림에는 반드시 손님과 주인이 있어야 하니 이를 뒤집어놓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 그림은 자세히 보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알 수 없게 되었으니, 붓놀림은 비록 재미있는 곳이 있으나 부득이 제2등에 놓지 않을 수 없다.
김수철:배치가 대단히 익숙하고 붓놀림 또한 막힘이 없다. 다만 색칠을 할 때에 세밀하지 못하고 또 우산 받치고 가는 사람은 조금 환쟁이 그림같이 되었다.
박인석:(명나라 화가) 深靑門의 筆意가 있으나, 반드시 심청문에게 배운 것은 아니고 자연으로 가만히 합한 것이다. 橫靄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이니 색칠할 때에 반드시 변환하는 뜻을 표현해야 아름답게 될 수 있으니 이 화폭은 마땅히 하등에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림 전체에서 횡애 그리는 한 법이 이 한 폭의 핵심이 되는데 여기서 전연 변환하는 뜻이 없으니, 이 때문에 한 번 먹물을 들이마시는 飮墨의 벌을 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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