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師弟間의 道理『藝林甲乙錄』에 나타난 스승의 모습(2)

clara jeon 2019. 12. 26. 17:16

      『藝林甲乙錄』을 이루어질 수 있도록 書畵 경연대회 자리가 마련된 것은 아마도 우봉 조희룡에 의해 서라고 추정된다. 글씨8명 ‘墨陣 8인, 그림8명 ‘畵壘 8인’, 陣이나 壘 모두 진지를 의미하는 것이니 이들은 서화의 藝林戰 兵士로 출전, 보름간 월성위궁인 추사의 집에서 “글씨와 그림들을 다투며 스스로 일시의 호걸로 꼽혀야 한다”고 혼신을 다하여 ‘甲乙’ 戰을 겨루었던 모양이다. 藝林戰,, 일종의 서화경연대회에 兵士로 출전한 墨陣 8인은 渼坡 金繼述, 松南 李亨泰, 雨帆 柳湘, 小貞 韓應耆, 藕堂 尹光錫, 古藍 田琦, 耳山 李繼沃, 鶴石 劉在韶로 이들은 6월 28일, 7월 7일, 7월 14일, 대련과 편액 그리고 해서를 출제 시험문제에 제출한 작품으로 사흘간 품평을 받았고, 畵壘 8인은 北山 金秀哲, 희원 이한철, 소치 허련, 고람 전기, 霞石 朴寅碩, 혜산 유숙, 蔗山 趙重默, 학석 유재소로 6월 24일, 6월 29일, 7월 9일, 화제는 ‘秋山深處’ ‘千里追懷’로 역시 사흘간 추사에게 품평을 받았다. 전기와 유재소는 묵진과 화루에 양진에 출전하였으니 『藝林甲乙錄』의 실제 등장인물은 14명이다. 당시 이들의 나이는 이한철 32세, 허련 31세로 연장자에 속하였고, 전기는 15세, 유숙 13세, 유재소가 14세로 이제 막 서화를 배우는 학동이었다. 추사는 이들이 제출한 각 답안지에 코멘트를 가하며 갑을의 평점을 하였다.
墨陣 8인이 제출한 대련과 편액 그리고 해서를, 대련의 출제는 ‘梅華詩境’ 4자구 서정적인 대구 高添雅興松千尺 靜養淸修竹數竿였는데 추사의 書評의 글은 실질적이고 교육적이다. 평한 내용 그 자체가 추사의 예술론이기도 한 핵심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유재소:재기가 거리낌없이 발휘되었으나, 다만 옛사람의 법식에서 아직도 힘을 붙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날이 대단히 많아서 차츰차츰 그 경지로 찾아들어가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당장에 취해 거둘 수는 없으나, 참 견문과 참 공부가 오래오래 되면 스스로 익숙해질 것이다. 글씨와 글자를 막론하고 실제적인 데에 입각하게 되면 그대는 옛사람의 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계술:해서는 10년 전 모양 그대로여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으니 모두 근일의 일종의 속된 습관을 깨끗이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 행서와 초서의 기운으로 한번 그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능히 구양순과 저수량의 門徑에 입각하지 못하고 圓嶠의 [筆訣] 가운데 나아가 미혹되었기 때문에 마침내 한 사람에도 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유상:이 글씨는 매양 붓을 대는 곳마다 두서가 없으니, 이는 대가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또 옛법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붓의 놀림은 자못 뛰어나다.
전기:대구 중 한 줄은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우니 과연 法氣라고 일러도 좋을 것이다. 왼쪽 한 줄은 너무 정리되지 않아 표준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이것은 分行과 布白에 일찍이 주의를 하지 않아서 이렇게 비뚤어지고 잘못되어서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自자의 위 삐침이 너무 제멋대로여서 전혀 먹을 아끼는 듯이 없고, 제 6.7자는 아래위에 갈구리하고 돌리고 꺾은 것이 도무지 제자리에 맞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오른쪽 한 줄을 잘 썼기 때문에 가장 上等으로 뽑아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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