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교육관과 현대적 의미화 <適千里說>-疑思問 (2)

clara jeon 2019. 12. 26. 15:31

추사가 학문은 옹방강. 완원 등의 지도로 경지에 올랐을지 모르나, 추사의 예술 세계는 속세를 反論理, 脫論理, 無論理로 초월한 백파, 초의와 같은 당대의 賤人들과의 또 다른 세계의 고수들과 만나며 날개 달 수 있었지, 단지 성리학 사상으로 탁상공론한 양반들의 집단 속에서 고리타분한 벼슬아치의 학자로 남아있었다면 그의 예술 세계는 꽃을 피우지 못하였을 것이다([추사연구]창간호,황정수,<종이에 되살아난 추사의 글씨>p213). 추사에게 양반들의 성리학 말류 폐단에 濕潤되지 않는 중인 제자들과 속세를 초월, 탈속한 백파, 초의는 추사의 양반 사대부 삶이 유배 등의 굴곡진 파란만장의 생으로 “막 문을 나섰을 때에 당해서는 진실로 갈팡질팡 어디로 갈 줄을 모르므로,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들, “마침 바르고 큰 길을 알려주고 또 굽은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세세히 가리켜주는 사람”들, 적천리의 스승들이었다.
      현재의 교육 풍토에 적천리적인 스승님이 계실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부모계급”을 이마에 달고, 성실한 금수저로 난해한 질문을 순간에 읽어내는 神功으로, 5G시대에 촌스런, 철지난 오지선다 표준형 시험에 우수한 성적을 내고, 기세등등하는, 그 시절 형편이 어려운 집 자녀들도 일류대를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한겨레신문], <오피니언>, 안순억의 학교 이데아,“위험한 독점과 세계, 현실, 역사, 삶에 비판적 성찰, 공정입시”, 안순억, 2019-11-11), 인간의 도리와 예를 아는, 싹이 푸르른, 가난한 학생들의 물음(“막 문을 나섰을 때에 당해서는 진실로 갈팡질팡 어디로 갈 줄을 모르는”)과 동행을 자처하는 지혜로운 마음이 가난한, 적천리의 스승이 계셨기 때문이다. 필자는 추사가 자신과 신분이 다른, 당대로서는 중하위권인, 그동안 살아온 삶과 양상이 다른 제자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하였을 때, 기존의 양반 울타리 안에서의 삶에 눈 푸른 혜안의 의문을 던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어떻게 하면 남들이 명백하게 일러준 말에 따라 힘써 행하여 功을 쉽게 거둘 수 있을까?” 이 의문문에는 눈 푸른 스승이 눈 푸른 제자를 愛憐하는, 추사의 적천리적인 사승관계의 함의하는, 先覺의 叡智逸脫的인 의미가 깊고 넓다고 보아 진다.
      질문은 창의력의 원천이고 모범답안에서의 일탈, “왜”, “learning how to learn?"으로부터 우러나온다. 추사가 설파한 “천 리 길을 가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經路의 소재를 분변한 다음,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 사고와 질문으로, 정체성을 主旨하기를, 直道以行하기를, 神似的 인 “功”으로의 삶을 勸告하고 있다. 추사는 평생 배움의 천 리 길에서 시대의 정형화를 거부한 중인, 스님들과의 진정한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었다. 추사의 평생배움의 삶은 기존의 사대부의 一便的인 삶에서의 예지적인 일탈이었다. 다양한 삶의 편린으로의 일탈로 경험되어진 예지를 기반으로 추사는 전형적인 양반 사대부의 삶을 이탈하여 어디에도 蹂躪되지 않는 정체성을 굳건하게 다질 수 있었다. 자신을, 일상의 삶을, 시대의 흐름의 소중한 사랑을 담은 정체성으로 추사는 자기 자신의 마음소리를 대변하는 사랑들을 명작, 걸작으로 창조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하여 창조물이 매개가 되어 자신이 걷는 배움 여정과 주위의 변화 양상의 관계성을 절감, 조선말기 조선토착화라 하여 賤流의 지류 문화에, 그의 제자들과 “완당바람”의 淸高古雅로의 물줄기로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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