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교육관의 현대적 의미화-<인재설> 과거제도와 대학입시 문제점(20)

clara jeon 2019. 11. 2. 16:52

     하버드대의 입시전형은 6단계로, 품성이 전인적이고 대학에서의 수학능력만 있다면 다양한 계층의 자녀들, 미국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종교, 종족, 직업, 더욱이 빈민계층을 대표하는 학생들을 선발한다. 하버드의 입학지원서의 “We don’t play number games” 서두, 점수라는 테두리, 순위, 그 엉성함의 비인간적인 차등화가 필요없다는 것이다. 독일은 대학입학시험 자체가 없다. 아비투어(Abitur)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한 학생은 지원하는 대학,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국가가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한다는 대학무시험입학제도는 독일사회 최선의 합의로 인재의 양성에 불필요한 정신적, 사교육비 등의 경제적인 낭비없이 독일을 경제적으로 유럽연합을 이끄는 강한 나라, 사회적 정의가 중시되는 성숙한 사회, 20세기 초 이래 노벨상 수상자를 100명 이상 배출, 대입의 경쟁 없이도 학문 수준 향상, 인재양성, 경제력 도약을 具現하였다.
      교육의 전문가들이 혜안으로 卓見을 제안하고 주창한다하여도, 학부모가 자녀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단지 현시적 祈福적인 바람으로 학문의 연찬을 학력의 보험으로 도구화하는 작금의 실태에서 開眼, 擊蒙하지 않는다면 단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벌이라는 족쇄를 풀어주고 우선, 公人과 私人으로서의 역할성을 智德體 겸비한 자녀들의 전인교육과, 전반적인 가계의 흐름과 자녀의 능력에 무리수가 없는 맞춤의 心魂의 교육을 실행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려는 교육이 오히려 자녀의 심신을 옥죄여 지옥의 삶을 조장하는 부모, 이제 학력에 보험을 가입하는 한국의 부모들은 자유. 사랑의 보험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가는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평생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고 배울수록 더 배우고자 하는 向心을,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교육의 理想적인 지향점이다. 重言復言 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교육현실은 교육 목적이 없고, 교육의 이념과 철학도 단지 문서상이나 이론적 표방으로만 무성, 실제 교육현장에 있는 것은 이른바 입시준비 교육의 회오리뿐이다(정성모, 다시 생각해야 할 [한국교육의 신화], , 학지사, 2012, 서울, p26). 교육의 이념, 철학, 목표는 엄청난 텍스트와 아이디어들을 수십 년씩 학습하여, 이를 자신의 실존과 연결, 私人과 公人으로서의 전인적인 지덕체의 진선미한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바람직한 전인적인 교육적 성공의 과정은 학생으로 하여금 현재의 교실에서의 배움이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폭넓은 인생관으로 교실 밖의 세상과의 진실된 소통으로 이어지게, 삶의 희망, 열정, 성공의 평생배움의 향학, 배움의 긍정 성향이 靈肉에 습윤, 습관으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교사의 수업의 질이 학습성과 결정 요인이 약 25%, 참된 교사의 역할이 가르치는 일이 ‘반’, 고쳐주는 일이 ‘반’일 진데(정성모, 다시 생각해야 할 [한국교육의 신화], , 학지사, 2012, 서울, p65, p71), 교사의 역량, 역할에 작금의 교육실태의 개선, 미래 교실의 희망이, 한국교육의 성패가 자리매김, 그 매조지이지는 않을까. 교육가, 교사의 이 묵직한 책임감에 啓發誘導 因材施敎의 염려도 기대도 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교육학과를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에 매료되어 존경의 심혼으로 추사 선조의 일생의 족적을 함께 동행, 그 갈피마다 꽂혀있는, 추사의 학문의 연찬과 그를 전수함의 열정, 추사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었고, 배운 바를 실사구시로 직도이행하였고, 그의 혜안으로 발굴한 인재들에게 그의 솔선수범의 평생배움의 삶을 전수하였다. 추사의 학문과 예술은 유배 등의 파란만장의 삶의 고난 백척간두의에서 승화, 그 과정에서의 체득한 학예의 결실을 秋史나무 그늘에 서성이는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수, 추사의 각별한 지도를 받은 그들은 조선말 쇠잔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학예에 여명이 비추이게 하였다. 추사 학예는 하루 하루, 오늘을 다진 평생의 공부로 결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맛”이 나야 한다. 그 맛은 眞善美, 진실되고, 착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따라서 그 쓰임새는 좋은 實事求是로 세상을 밝히는 心魂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