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교육관의 현대적 의미화-<인재설> 과거제도와 대학입시 문제점(12)

clara jeon 2019. 11. 2. 16:41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5월 28일 무술 1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과거의 폐단에 대한 윤음을 내리나 경장해 가기가 어려워 실현하지 못하다

과거(科擧)의 폐단에 대한 윤음(綸音)을 내리기를, "내가 듣건대 정백자(程伯子)의 말에 ‘천하의 일은 크게 변혁하면 크게 유익하고 작게 변혁하면 작게 유익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바야흐로 지금 조정의 큰 폐단은 과거보다 심한 것이 없다. 요행으로 차지하게 되는 사람이 도도(滔滔)하여 한 해가 한 해보다도 심해지고 하루가 하루보다도 심해지고 있으니, 장차는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고 국가가 국가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는 어찌 크게 변혁해야 할 바가 아니겠는가? 대저 과거 제도는 옛적부터의 것이 아니다. 옛적에는 인재를 뽑는 방법이 예악(禮樂)으로 그의 재질을 양성해 놓고, 순자(詢咨) 하여 그 중에서 현명한 사람을 뽑았는데, 후세로 내려오면서는 이선(里選)하는 법이 무너지고서 한(漢)나라의 과거 제도가 창시되었었다. 현량과(賢良科)와 효렴과(孝濂科)로 길을 나누고, 속식(續食)과 계해(計偕)로 예절을 갖추어 놓아, 비록 선비를 교양하고 현자(賢者)를 높이는 의의가 있기는 했지만, 삼대(三代) 시절에 빈흥(賓興)하던 성대함은 이미 땅을 쓸어버린 듯이 없어졌다. 오로지 사부(詞賦)로 시험을 보임은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의 고루한 풍습이었고, 여기에다 경의과(經義科)를 집어 넣음은 송(宋)나라와 원(元)나라의 유제(遺制)이기는 하나, 저것은 성운(聲韻)만을 배우게 되었고 이것은 첩송(帖誦)만 능사로 여기게 되었으니, 옛사람의 이른바 ‘날마다 만언(萬言)을 외운다 하더라도 치체(治體)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한 것이 참으로 적확한 논의이다. 황명(皇明) 때에 와서는 역대의 제도를 가감하여, 내외(內外)에 발을 쳐 서로 내통하는 짓을 금단하고, 해를 구분해서 보이는 초시(初試)와 회시(會試)에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의 요체를 책문(策問)하였으니, 당나라나 송나라 때에 오로지 시문을 짓는 재능으로만 뽑던 것에 비하면 요월(遼越)처럼 멀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조정의 취사(取士)도 역시 과목(科目)의 제도이다. 더러는 팔도(八道)의 선비를 모두 모아 널리 보이기도 하고 더러는 단지 관학(館學)의 유생들만 시험 보여 간략하게 뽑기도 하고, 명경(明經)과 제술(製述)로 제도를 구분하기도 하고 초시(初試)와 회시(會試)의 법이 있기도 하고, 증광(增廣)과 식년(式年)으로 명칭을 달리하기도 하고 대과(大科)와 소과(小科)의 명목이 있기도 하여, 법제가 한결같지 않고 명목이 번다하다. 국가에 경하할 일이 있으면 과거를 보여 선비를 뽑는데 취지가 함께 경하하기에 있는 것으로서, 당(唐)나라의 ‘증광(增廣)’이란 명칭을 취택한 것이요, 가을에는 초시를 보이고 봄에는 회시를 보이는 것이 각각 정해진 해가 있는데 황조(皇朝)의 식년제를 본뜬 것이다. 이른바 별시(別試)는 반드시 병년(丙年)에 있게 되는데 더러는 국경(國慶)으로 인해 보이기도 하고, 이른바 정시(庭試)에다 또한 전시(殿試)를 보이고 혹은 초시를 보여 취사(取士)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가 증광시와 식년시의 대과(大科)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성묘(聖廟)에 친알(親謁)할 적에는 알성과(謁誠科)가 있고, 혹은 명절(名節)을 만나면 절제(節制)를 보이게 되어 있는데, 이는 진실로 열성조(列聖朝) 이래 관학(館學)의 유생들 위열(慰悅)하기 위한 한 때의 특별한 은전에서 나온 것이다. 명경과(明經科)를 반드시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으로 하는 법을 만들었음은, 대개 경서(經書)에 밝고 조행(操行)이 있는 선비를 구득하게 되고, 또한 선비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모두 사문(斯文)에 종사(從事)하고 딴 길로 달려가지 않게 하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