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교육관의 현대적 의미화-<인재설> 과거제도와 대학입시 문제점(2)

clara jeon 2019. 11. 2. 16:01

      필자가 앞의 글에서 언급한 한국의 자살률은 2005년 이후 2017년 한 해만 빼고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특히 10대를 비롯한 젊은 연령층 30대까지의 자살률이 1위이다. 22%의 10대의 자살의 원인은 성적과 진학, 전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쉼표 없는 헬조선의 잘못된 교육의 방향을 表明, 삐둘게 진입한 교육, 死力을 다해 입학한 대학은 일부계층의 전유물화, 경제적인 안정에서 소외된 30대들에게도 자살로의 휴유증으로 우리사회에 생명의 손실이라는 트라우마를 흔적으로 남기고 있다. 부끄러운 露出이다. 입시는 교육(학)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부의 획득, 지위의 상속 문제, 일종의 사회보험으로, 이 열병은 재산 다음 중요한, 문화자본이라는 보조 재산을 상속하려는 일종의 투자로서, 자산과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만큼의 투자, 상속의 효과가 확실하게 발휘되는 곳이 없다는 경험적 진실, 투자에는 자본 규모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에 그 어떤 입시제도도 ‘금수저’들에게 유리하게 변형된다(한겨레신문 [김동춘 칼럼] ‘입시 문제’에는 답이 없다, 2019-09-24,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조선시대 과거 응시자격은 양반 사대부들이 專有했다. 즉 조선의 과거제도라는 것이 특정한 집단이 유학의 집대성이라는 특정한 사서삼경을 암기 암송하여 특정한 신분계층에게 자손만대에 “금수저” 살고자 하는 신분 고착화 제도였다. 平民 양인들도 자격은 있었으나 신분차별이 엄존한 현실에서는 제도는 형식,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신분의 안위와 家系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분의 계층 이동 사다리인 科擧에 상민이나 천민을 응시하지 못하도록 암암리에 제도에 신분차별의 장애를 장치하였다. 학식이 모자라는 양반도 좌우지간 합격을 시켜야 했으니 시험이란 것이 추사의 지적한 대로 傳注와 帖括, 즉 시험에 나올만한 低等한 문제풀기에만 재탕 삼탕 종횡무진, 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후진적인 인재충원은 바보들의 행진, 나라의 세금을 徒食하는 망국의 무리, 계급적 세습을 한 무지한 지도계층은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을 衰滅하게 하였고, 결국 조선은 일제에 의해 강점되었다.
      과거제도는 유학의 이상적 인간상인 六藝에서 악.사.어.수는 희석되고 登科를 정점으로 하는 사적인 관변 출세만을 위한 예와 서만을 강조한 폐해는 文弱의 풍토화를 조성하였고 문약은 국력 쇠잔, 망국의 明若觀火, 역사는 반복된다. 대한민국의 학벌계급사회 현재의 실상, 조선시대의 금수저를 향한 대내림 집단무의식은 고착화된 과거제도의 병폐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한국의 안과 밖을 예리하게 통찰한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저자, 1973년생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인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전임교수 박노자 교수(Vladimir Tikhonov)는 “신분 차별은 없어졌다기보다는 패턴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거 사회의 양천, 반상 차별을 대신해서 학벌 사회의 틀이 공고해졌다. 양반이 세습 신분인 반면 학벌은 개인이 획득하는 신분이라는 반론이 제기될지 모르지만, 속칭 ‘스카이’(SKY) 학벌이 점점 ‘세습’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가감없이 분석, 비평하였다. 부연하자면 조선시대 과거제도에서의 합격한 양반층, 지배계급의 세습이 오늘날의 ‘스카이’(SKY) 학벌로 ‘세습’되어가는 경향과 그 맥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어 박노자 교수는 “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인 만큼 스카이 학벌 소유자인 부모들은 그 아이들을 아예 미국의 사립 초·중·고등학교, 명문대에 일찌감치 유학 보내는 등 국내의 학벌주의가 ‘국제적’ 면모”화 되어가고 있다“고 慨嘆, 더욱이 추사의 과거입시의 필답고사를 위한 암기 암송 위주의 공부에 대한 한탄과 현재의 대학입시와의 공감, “19살 이전 삶·학습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선생님과 교과서가 지시한 대로 특정 내용을 암기해서 암기 경쟁으로 특정 집단에의 소속을 따내는 일이라면, 자율적·독립적·주체적 개인 내면의 형성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율적 개인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다 스스로 회의해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인데, 암기 경쟁을 위해서 10여년 동안 관리되는 젊은이가 그런 자율성이나 주체성을 획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비관적인 전망이다(한겨레신,[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학벌 사회에서 ‘주체적 개인’은 없다, 201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