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仙花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江浙 이남지역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곳에는 村里마다 한 치 한자쯤의 땅에도 이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송이가 많게는 十數花 八九萼 五六咢에 이르되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꽃은 정월 그믐,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이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문 동쪽. 서쪽이 모두 그러하건만, 돌아보건대 굴 속에 처박힌 초췌한 이몸이야 어떻게 이것을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눈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토착민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牛馬에게 먹이고 또 따라서 짓밟아 버리며, 또한 그것이 보리밭에 많이 난 때문에 村里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한결같이 호미로 파내어 버리는데, 호미로 파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또는 이것을 원수 보듯 하고 있으니, 物이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완당전집] 제3권, <書牘>, 與權彝齋敦仁, 第五)
추스러진 추사의 眼目은 우선 제주의 학인을 觀心하였고, 그리고 제주의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었다. 추사의 학인적인 기질이 제주의 우둔하고 무지한 무리들을 초월한 기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일리가 없어 추사는 기재를 제자로 받아들여, 영재는 서울 장동집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였다. 제주 절경 중 추사는 특히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풍경과 花品에 반하기도 하였지만 수선화의 珍品의 귀함을 모르는 우둔하고 무지한 무리들에게 함부로 다루어져 파내어 버려지는 모습을 자신의 신세와 한결로 느껴 자신의 방 탁자에도 들여놓고 감상하기도 하고, 훗날 수선화에 대한 애틋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
一點冬心朶朶圓
品於幽澹冷雋邊
梅高猶未離庭砌
淸水眞看解脫仙
“그 꽃은......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또는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 이 죄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의 문 동쪽. 서쪽이 모두......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이거니와, 눈을 뜨면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눈을 차단하여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눈을 감아 차라리 유배의 삶을 차단하고 싶은, 추사 삶, 歲寒의 孤島의 파도 소리, 지음을, 漢陽에서 한결같이 同心知友로 듣고 있을 이재는 눈물고인 먹물로 답글을 곧바로 썼을 것이다. 추사의 눈에 가득 들어오는 物이 수선화뿐이었을까. 차라리 그리움들에 눈을 감고 싶다는 추사의 막막한 마음을 읽고, 가다듬어 지음지우로 보낸 이재의 마음, 가히 짐작이 가는, 그에 대한 추사의 답글이다.
나는 매양 합하께서 비호해 주시는 성대한 혜택과 힘써 일깨워 주시는 지극하신 뜻을 입어, 주야로 몸을 경계하여 가지며 動靜을 스스로 관찰하여, 감히 스스로 해이해지거나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이렇듯 구차하게 이어가는 실날같은 목숨으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 어찌 다른 까닭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또 반복하여 정녕스럽게 下敎하셨는데 여기에 말씀하신 天人 간에 순환하는 禍福의 이치와 患難을 인하여 動心忍性을 해야 한다는 경계는 蓍龜를 통해서도 반드시 증험할 수 있고, 역사상으로도 전혀 틀림이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여기에 힘껏 노력하여, 뜻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몸을 확고하게 가지고 지켜서, 끊임없이 전진하여 혹시라도 이것을 실추시키지 않으려고 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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