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 : 權敦仁(3)

clara jeon 2019. 1. 18. 14:44

     다음의 편지글은 앞의 글, <家禍, 북청유배> 부분에서 언급하였으나 위의 글과도 연계되어 附加하여 옮긴다. 제2신에 이재가 “끊임없이 왕래하면 벗만이 너의 생각을 따르리라”에 대해 얕은 견문으로 설하였는지, 추사는 이재의 오류를 지적하였지만 다독이며 다음과 같이 화답하였다.(필자의 앞의 글) 이미 앞의 글에서의 언급으로 중첩되나 추사가 관료 생활 내내 近侍로서, 왕에게 敎書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지제교([추사연구] 2호, p274)를 할 수 있는 文史哲 학문의 깊이와 필력을 엿볼 수 있는, 그리고 3살 위인 이재에게 향하는 마음과 예가 두 사람 학연의 초기부터 이미 극진한 편지글이므로 일부를 발췌한다.

지난번 인편에 勻函이 없었을 때는 등골뼈를 곧추세우고 閤下께로 향모하는 한 마음에 은연중 얻은 것이 있는 듯 하였는데, 균함이 있는 지금은 허탈한 나머지 종이가 초췌하고 먹이 피로하여 입은 마치 아교처럼 뻣뻣하게 굳어지면서 멍하니 무엇을 잃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있고 없고 얻고 잃고 하는 즈음에 인정의 顚倒됨이 이러하니, 그 이른바 ‘끊임없이 왕래하면 벗만이 너의 생각을 따르리라’라는 것인가 봅니다. .....
그런데 지금의 說者들은 모두 왕래 소장하는 것을 하나의 판에 박힌 文字처럼 간주하여, 예컨대 否가 가면 泰가 오고 태가 가면 비가 오며, 君子의 도가 자라나면 小人의 도가 소멸되고 소인의 도가 자라나면 군자의 도가 소멸되는 것이 서로 마치 교체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대역]의 방통하고 변통하는 도리가 의당 이러하지 않을 듯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를 日月寒暑에 끌어다 응용할 경우에는 단지 해만 오고 달은 오지 않으며, 추위만 가고 더위는 가지 않게 될 것이니, 어찌 이런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뜻에 밝게 揭示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말에 대해서 지금의 설자들로 말하자면 이를 마치 私意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듯한데, 그렇다면 원문의 ‘바르면 길하여 뉘우침이 없으리라.’라는 데에 대하여, 부자가 일컬은 ‘귀착점은 같되 길은 다르며, 이룸은 하나이되 생각은 백이나 된다.’는 말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겠습니까?
함괘의 초륙과 육이는 도를 잃은 것이기 때문에 구사의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항괘 . 익괘 . 손괘와 변통하여 ‘바르면 길하여 뉘우침이 없다.’는 것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것을 사사로운 뜻으로 본다면 그 ‘바르면 길하여 뉘우침이 없으리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상전에 이르기를,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은 광대하지 못한 것이다.”
하였으니, 그 광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왕래하여 광대한 데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대하지 못한 것은 곧 도를 잃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것을 가지고 곧장 광대하지 못함의 뜻으로 삼아 버린다면 ‘바르면 길하여 뉘우침이 없다.’는 것은 문득 붙일 곳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지금 두 손 모아 기축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합하의 ‘끊임없이 왕래한다.’는 데에 대한 뜻이 크고도 지극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더 항괘. 익괘. 손괘와 변통하는 뜻에서 깊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바르면 길하여 뉘우침이 없다.’는 것을 이루게 된다면, 군자의 도가 자라나고 소인의 도가 소멸되는 것이 또한 타당하지 않겠습니까.([완당전집] 제3권, <書牘>, 與權彝齋敦仁, 第二)

참으로 凡人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을 추사의 심오한 起承轉棙의 가르침에 권돈인은 999의 노력을 다하고 나머지 일분까지도 노력으로 “군자의 도가 자라나고 소인의 도가 소멸”될 수 있도록 심신 수행의 最善과 最先의 학예를 겸비한 정치인으로 입지하였을 것이다. (필자의 앞의 글) 평생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학예인으로서의 삶을 自暴自棄하거나, 배우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그 긴장을 놓지 않고, 박학독행 평심정기하여 格物致知하는, 이처럼 박학한 지기지우를 권돈인은 自矜하며 평생지기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필자의 앞의 글) [완당전집], <書牘> 편에서 권돈인에게 보낸 서찰 서른다섯 편 대개가 위의 서간문처럼 학구적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심정기로 실사구시 탐구하던 추사도 제주도 원악지에서 유배 시작의 날들에서는 마음의 평정을 잃었는지 그 막막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