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평생배움형성과정에서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彝齋 權敦仁
3)-彝齋 權敦仁
이재 권돈인(1783-1859)은 추사 삶의 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밑줄이 쳐지는 명문처럼 추사의 파란만장의 삶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평생지기이다. 추사 삶의 일대기를 編年으로 펼칠 때 어느 시기에도 추사와 이재 우정의 맥이 끊어진 시기가 없어, 이재는 추사 삶 갈피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사할 수 있도록 지켜준 파수꾼이었다. 추사보다 세 살 위인 이재는 추사에게는 그림자 같은 벗으로 평생 무수한 편지와 시. 서. 화를 주고받으며 화답하고 합작하고 合評, 학예로 말하면 항시 추사가 이재에게 베푸는 입장이었지만, 세상사와 인간적인 일에서는 추사에게 도움을 주어 30대 중년에 들어서 사귀기 시작하여 특히 말년의 외로움을 의지할 때까지 추사는 늘 이재에게 감사하는 처지였다.([완당평전]1, 유홍준, p144) 이들이 평생토록 지기가 될 수 있었던 연유는 학문적인 성향, 즉 조선의 宋學, 성리학의 空理空論에서 벗어난 개방적인 학예로의 경도, 특히 淸朝의 고증학. 금석학에서의 심도 있는 탐구, 격물치지의 학예연찬은 以心傳心으로 추사와 이재를 伯牙와 鐘子期와 같은 知音이 되게 하였다. 더욱이 추사와 이재는 정치적으로 안동김문을 배척하는 反外戚的인 노선으로 異見이 갈리는 일 없이 合心하였기 때문에 현실적인 삶에서도 갈등 없이 同心知友로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재는 본관은 安東으로 안동 권문은 명문가로 우의정을 역임한 權尙夏의 5대손, 군수를 지낸 權中緝의 아들이다. 1813년 실시된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正字 사간원 獻納을 거쳐, 1819년과 1835년에 冬至使의 서장관과 進賀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이때 추사의 소개로 청나라의 석학들과 학연을 맺었고 이 견문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청조의 금석, 고증학을 연찬하여 더욱 청조의 학예에 조예가 깊어졌다. 1842년부터 1851년까지 친정을 단행한 헌종을 반외척 近侍세력으로 8년간 보필하며 실무관료로 승승장구,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851년, 앞의 글 추사의 북청 유배에서 언급하였듯이 철종의 증조인 眞宗의 祧遷禮에 관한 주장으로 인해 파직당하고 순흥으로 유배, 안동김문의 反勢力으로서 현실 정치권에서 완전히 축출되었다.
이재의 성품 역시 추사와 같이 直道以行으로 剛氣하나 歲寒三友圖를 潤筆로 그린 [세한도](도판 208 p. 402 탑재)에서 읽어지듯이 추사의 기개와는 다른 면모, 柔順함을 겸비하고 있어, 삼정승을 역임할 만큼 벼슬길이나 사대부로서의 삶이 평탄하고 풍요로운 편이었다. 이재는 추사보다는 3년 연상이었으나 학예적인 면에서는 학과 예를 겸비한 출중한 추사를 이해하려고 자신도 탐구, 연구하며 추종, 동행하였으며 종내는 水魚之交의 지음으로 추사를 지지, 지원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추사가 이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蛇蝎視하지않고 인정, 격려해주는 형에게 마음 놓고 자신이 연찬한 심오한 견해, 비평을 虛心坦懷하게 밝히려하는 학예인 오롯한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더욱이 추사는 월성위가 장손으로서 가문을 이끌어 가기 위한 책임, 심적, 물질적인 부담 등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전반적인 삶의 장애를 이재가 해결해 주기를 원하는 어투로 토로하고 있고, 이를 知音한 이재는 정치권에서는 축출되었으나 명문가로써 가세는 여전해 여러모로 추사의 고통을 거두어주었다. 이러한 이재를 “한 사람만이 유독 나를 불쌍히 여기시니, 그 지극한 정의가 위로 하늘에 다다라서 마치 剝消의 와중에 陽剛 의 군자가 上九에 위치하여 모든 사람의 떠받듦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하였으니, 이러한 종자기를 둔 추사는 제주 유배의 길 위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마른 먹을 비며 성난 다람쥐에 억울한 심사를 그린, [耄耋圖]의 꺽이지 않는 기개([완당평전]1, p.334)로 원악도, 사나운 풍랑의 유배, 백척간두의 혹한의 삶에서 절망을 解消,극복하고 추사로 실존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추사가 이재에게 보낸 서찰을 중심으로 추사와 이재의 학연, 거개가 추사의 학문적인 토로, 그리고 추사 삶의 고비마다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삶을 지탱하게 해준 이재의 깊은 속내를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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