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 : 阮元 (3)

clara jeon 2019. 1. 12. 18:49

       학예의 정진과 발전은 法古創新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아무리 뛰어난 창조도 그 바탕의 흐름은 前古의 典範이 있으며, 학예 연찬에서 학인과 예인의 천착은 이 전범의 맥락을 탐구하는 과정, 그 성취감에서의 즐거움, 희열로 학예 정도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추사의 학문 탐구는 그 누구의 학설, 종파에 맹종하지 않는, 나름의 개성화, 예를 들어 운대가 추사를 ‘완당’이라는 호를 내리면서까지 제자로 인증하였으나, 추사는 운대의 南帖과 北碑 서체의 대립적인 평가를 마냥 추종하지는 않았다. 남첩과 북비를 절충, 양자 모두를 격물치지 연구, 학습하여 정통 서예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파격의 아방가르드적인 추사만의 추사체를 창출하였다. 또한 담계는 詩作에서 戴震의 性靈論을 白眼視하였으나 추사는 대진의 글을 抄錄한 것으로 보이는 <私蔽辨>에서 疏漏, 邪曲, 偏僻의 淫放鬼怪를 경계한 성령으로 출발을 삼고 禮, 義, 仁의 至善의 格調로 마무리한다는 성령. 격조론을 調律하였다.([추사연구]4호, 이철희, <秋史 詩 속의 飮食男女> p.241) “남이 그렇다고 말해도 나 또한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는다”라는 운대 가르침을 한 차원 넘어선 靑出於藍 추사, 후대의 학예인들이 추사에게 매료되어가는 이유도, 추사의 학예만이 아니라 추사라는 인간에게 이끌려 갈 수 밖에 없는 이유, 그 魅了性이 바로 이러한 추사의 자기화로의 獨自性인 것이다.     

      추사는 그가 산 당대에도 현대에도 보기 드문 평생배움인이다. 원악,고립무원의 궁벽한 유배지에서도 배움으로 極寒의 百尺竿頭 삶을 버틴 “( 平生操持力)세상살이 삼십 년에(閱世三十年)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바로 알았네(方知學爲福)”라한 自作詩,추사 말년을 마무리한 과천시절, 同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附記한 담박한 시 한 편은,詩書畵文史哲 학예를 섭렵한 格物致知의 학예인,법고창신으로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추사체’를 창출한,평생을 학습과 창신과 노력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直道以行 工夫道人 추사를 含意하고 있다. 추사에게 있어서 스승들에게서 배움으로 인한 학문의 천착, 탐구, 연찬 과정에서의 깨달음이란 궁극적으로 隸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로, 세속을 탈피하였으나 세상과 不二하지 않는 至高至順 정신의 경지로의 立志인 것이다. 추사와 동시대의 인물인 樵山 柳最鎭(1791-1869)은 추사체의 특징을

......감히 비유해서 말하자면 佛歌. 道家에서 세속을 바로잡고자 훌쩍 세속을 벗어남과 같다고나 할까(柳最鎭, [樵山雜著], 유홍준, [완당평전]1, p.14 재인용)

초산의 위의 글은 제주 유배 이후 추사체에 대한 비평으로, 이는 추사의 [留齋], 그리고 절필 [版殿]에서 읽을 수 있는 추사 학문과 예술의 虛虛實實, 진정,배움의 속내로 평생을 즐겁게 산 直道以行 工夫道人의 총체적인 평가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