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 : 權敦仁(2)

clara jeon 2019. 1. 18. 14:40

      추사의 글들은 명료하다. 추사의 성격, 直道로 펼쳐져 막힘없는 문장력으로 핵심을 꿰뚫으며 달려나가 독자로 하여금 마침표까지 쉬지 않고 읽게 한다. 그러나 되새김, 반추하며 읽어내려 가다보면 깊은 사고를 하게 되고, 행간 행간사이에 함축되어 그려진 추사의 응축된 深意에 靑眼되는 독자들의 학예를 한 걸음 더 정진하게 하는 추사 특유의 製述의 경지가 있다. 이재는 한 편의 추사의 글에서 수십 권의 책을 숙독한 것 만큼 마음이 정화, 순화, 그리고 精進하였을 것이다. 다음 편지글은 [주역]에 논지로, 정밀하기도 하지만 일상과의 연관성으로 풀어내는 추사의 차근한 격물치지, 人道와 天道의 합일, 乾坤과 飮食 男女의 道, 無上無餘 均等의 妙에 의한 死生과 終始 순환에 대한 추사의 說文이 실사구시적이라 청장년 시절, 벼슬살이를 하는 이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으리라 추단된다. 실생활과 밀접한 부분만을 발췌한다.

易道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황송하고 부끄럽고 조심스러움을 감당치 못하여 마치 몸둘 곳이 없는 것만 같습니다. [주역]이 어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대개 人道의 떳떳함은 飮食男女에 불과한 것이므로, [주역]의 가르침은 곧 음식 남녀의 일을 좇아 이를 재단하고 절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끈을 맺어 그물을 만든 것은 대체로 離卦의 象을 취한 것이고, 農器具를 만들어 농사를 짓게 한 것은 대체로 益卦의 상을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十三卦 가운데서 음식에 관한 것을 맨 먼저 든 것은 그것이 人道의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下經의 맨 처음에 나오는 咸卦는 남녀의 도를 發明한 것입니다. 乾坤이 일찍이 남녀의 도가 아님이 없고 이것이 곧 天道이므로, 특별히 함고에서 인도로써 발명하여 천도에 부합시켰으니, 이는 天人이 서로 함께하는 즈음에 어디가나 인도가 곧 천도 아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인도를 나두고 천도만 말하는 것은 또한 [주역]의 의의가 아닙니다. 따라서 [주역]에는 聖人의 도가 네 가지 있으니, 그것으로 말을 하고, 그것으로 움직이고, 그것으로 器具를 만들고, 그것으로 卜筮를 하는 것인데, 이는 모두 음식 남녀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요, 처음부터 심오하고 현묘하여 위로 先天을 연구하고 河圖. 洛書를 천명해서 더이상 미루어 캐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아닙니다. .......
대체로 소식을 방통시켜 상하로 오르내리게 하는 묘리는 바로 많은 것을 덜어다가 적은 데에 더하여, 물건의 타당함에 맞추어 균평하게 베풀어서, 일체 음양이 바르고 旣濟가 정해지는 데로 귀착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기제의 정해짐이 다만 一定해 버리고 말 경우에는 또 하나의 판에 박히게 되므로 佛氏 무리들은 이 境界를 엿보아 不生. 不滅. 不增, 不感이란 것으로써 더 이상도 없고 더 남은 것도 없는 것(無上無餘)하는 묘가 있어 死生과 終始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이란 것은 허물을 고치는 글입니다. 그래서 비록 否卦. 剝卦. 坤卦. 乾卦 같은 경우도 원래부터 변통할 수 없는 도리는 없기 때문에, 궁하면 통할 수 있고, 죽으면 살아날수 가 있으며, 어지러우면 다스려질 수가 있고, 끊어지면 이어질 수가 있어서, 일찍이 時運을 어찌할 수 없다거나 氣質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데에 맡겨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색한 운수를 형통한 운수로 돌리고, 아낌없이 허물을 고치며,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방지하고, 편안한 때에 위태로움을 잊지 않아서, 모든 것을 평균하게 調劑 시키는 것이니, [大學]의 治平과 [中庸]의 中和가 모두 이것과 서로 表裏가 되는 것입니다. ......
평균이라는 것은 物마다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니, 제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이 평균해지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 오직 평균을 힘쓰므로써 물마다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니, [주역]의 큰 뜻이 바로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완당전집] 제3권, <書牘>, 與權彝齋敦仁, 第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