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冬이 교차하는 즈음에 崇體가 百福 하십니까? 몸을 돌려 北斗를 바라보니 海天이 아득하여 시야가 다하는 곳에 애간장이 끊어져서, 다만 우러러 축복이나 드릴 뿐입니다.
행실치고는 선대에 욕이 미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것이 없고, 그 다음은 몸에 形具가 채워지고 매를 맞아서 곤욕을 받는 것인데,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겸하였습니다. 40일 동안에 이와 같은 慘毒을 만났으니, 고금 천하에 어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천인 만인 모두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한 사람만이 유독 나를 불쌍히 여기시니, 그 지극한 정의가 위로 하늘에 다다라서 마치 剝消의 와중에 陽剛의 군자가 上九에 위치하여 모든 사람의 떠받듦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비록 이렇게 大陸을 다 지나 다시 바다를 건너와서 백번 천번 구르고 닳는 가운데서도 실날같은 한 목숨을 비호에 의탁하여 이직껏 보존하고 있으니, 내가 어둡고 완고하기가 木石보다 심해서 오늘날까지 지탱할 수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내가 27일에 비로소 배에 올랐는데, 아침에는 바다가 꽤 잔잔하더니 낮에는 바람이 사납게 불어 배가 따라서 요동치므로,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허둥지둥하는 가운데 현기증이 나서 구르고 자빠지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혼자 船頭에서 아무 탈없이 조용하게 있었으니, 天吳. 海若도 나만은 도외시해서 그랬던가 봅니다. 그래서 해가 떠서 배를 출발하여 석양에 목적지에 당도하니, 이 같은 짧은 시간에 당도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던 터라, 제주 사람들이 모두 ‘북쪽에서 배가 날아서 건너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王靈이 돌보신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大靜에 도착하여서는 한 군속의 집을 얻어 붙였는데, 그런대로 울타리 밑에서나마 밥을 지어먹을 수가 있었으니, 이것도 분수에 지나칩니다. 그런데 앞으로 또 어떻게 지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완당전집] 제3권, <書牘>, 與權彝齋敦仁, 第四)
이 막막함을 지음한 이재의 마음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이재는 위로의 마음을 홍건하게 담은 답글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彝齋集] 27권이 소실되어 그를 읽을 수 없으나 안동김문의 반외척세의 謀主로 희생양이 되어 死地로 내몰린 추사를 지켜내기 위해, 추사 학예의 재능을 몹씨 아끼는 이재는 음식, 약재, 서책, 서화 등을 인편이 닿는 대로 끊임없이 보내주어(권혁룡,[彛齋 權敦仁의 作品 硏究], p.124-125) 그 지극한 이재의 정성을 입어 추사의 다음 서찰은 그 특유의 학구적인 호기심이 發動되며 대정현 주변 학인,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한 遠惡 孤島에서의 나름의 삶을 터득, 평심정기한 글을 보낸다.
이곳의 風土와 人物은 혼돈 상태가 아직 闢破되지 않았으니, 그 우둔하고 무지함이 저 魚蠻. 蝦夷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래도 그 가운데 또한 무리를 초월한 奇才가 있기는 하나, 그들이 읽은 것은 [痛鑑]. [孟子] 두 종류의 책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비록 이 두 가지 책만 하더라도 어디에나 구애될 것이 없는데, 어떻게 이와 같이 責備할 수 있겠습니까. 타고 난 본성은 남북이 서로 다른 것이 없으나, 다만 그들을 인도하여 개발시켜 줄 스승이 없으므로, 슬피 여기고 불쌍히 여겨 이와 같이 탄식을 하는 것이 정히 이곳을 위해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漢拏山 주위 4백 리 사이에 널려있는 아름답고 진기한 柑. 橙. 橘. 柚(책 주) 등은 사람마다 다 같이 아는 바이거니와, 이 밖의 푸른 빛이 어우러진 奇木名卉들은 거개가 겨울에도 푸르른 植物러서 모두 이름도 알 수 없는 것들인데, 여기에 나무하고 마소 먹는 것을 금하지 않으니. 이것이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가령 나막신 신고 지팡이를 끌고서 이곳저곳을 탐방한다면 반드시 기이한 구경거리와 들을 것들이 있으련마는 이 위리안치된 생활로 어떻게 그런 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楚나라 남쪽에 돌은 많고 사람이 적은 것은 예부터 그리하였거니와, 한라산의 영이하고 충만한 기운 또한 초목에만 모였을 뿐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어찌 그 기운이 物에만 모이고 사람에게는 모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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