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18

clara jeon 2018. 8. 20. 18:54

추사가 받은 유배형은 絶島 중 한양에서 가장 먼 遠惡地 제주도 서남쪽 대정현으로, 대정현은 그곳 토박이들도 못살 곳이라 하여 “못살포”라 불리어지는 곳이다. 더욱이 위리안치었으니 추사는 중죄인으로 제주 목사의 철저한 감시 하에서 주민들과의 접촉은 물론 대문 밖의 출입이 금지된 연금 상태의 유폐인이었다.
    추사가 1840년 9월 2일 유배의 명을 받고 9월 며칠에 謫居地 제주 대정현으로 길을 떠났는지의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아우 명희에게 보낸 서신의 기록으로 보아 완도에서 제주로 가는 배를 탄 것은 9월 27이었으니, 한양에서 대략 20일이 걸려 완도에 도착하여 배를 탄 것으로 보이며, 추사가 이 유배길에 남긴 자취는 매우 드물다.([완당평전]1, p332-339) 그 흔적 중에 추사가 帶方(남원)에서 그린, 그의 평생 知己之友 권돈인에게 보낸 그림이 한 장 있는데 다람쥐의 형상에 그의 억울한 심사가 神似로 표현된 <耄耋圖>(부록 그림 탑재)이다. ‘늙은이’라는 의미의 이 그림의 다람쥐 형상에 추사는 그의 분노를 다람쥐의 온몸에 웅크려 담아내고 있고, 謫居에서 가시울타리에 갇힌 채로 쳇바퀴의 나날의 자신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이미 예지하고 있다. 그러나, 鞫問 중에도 ‘준엄하고 명백한 기상이 日星을 능가하고 金石을 꿰뚫을 만’ 그 기개는 꺽이지 않아 이 <모질도>의 다람쥐 눈에 깃든 추사의 기상은 푸르다.
    추사는 대정현 적거지에 도착하여 아우 명희에게 보낸 서간에는 완도에서의 출항부터 유배 거처인 대정읍성 안동네 송계순의 집의 정황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지난 27일, 배에 오를 때에 대략 몇 자를 써서 봉이에게 부쳐 먼저 돌아가도록 했었는데, 과연 즉시 돌아가서 지금까지 이둔의 사이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서신을 전한 뒤로 벌써 7-8일이나 지나서 어느덧 가을이 다하고 초겨울이 되었는데 남쪽 끝의 기후가 마치 육지의 8월 기후 같아서 추워질 기미가 전혀 없으니, 금년 절서의 몹시 늦은 상황이 또한 이러한 것인가?....
나의 행차는 그날 행장을 점검하여 배에 오르고 나니 해가 벌써 떠올랐었네. 그리고 배의 행로에 대해서는 북풍으로 들어갔다가 남풍으로 나오곤 하다가 동풍 또한 나고 들고 하는 데에 모두 유리하므로 이에 동풍으로 들어갔는데, 풍세가 잇달아 순조로와서 정오 사이에 바다를 거의 삼분의 일이나 건너버렸었네.
그런데 오후에는 풍세가 꽤나 사납고 날카로와서 파도가 거세게 일어 배가 파도를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므로 金吾郞으로부터 이하로 우리 일행에 이르기까지 그 배에 탄 여러 初行人들이 모두가 여기에서 현기증이 일어나 엎드려지고 낯빛이 변하였네. 그러나 나는 다행히 현기증이 나지 않아서 진종일 뱃머리에 있으면서 혼자 밥을 먹고, 舵工. 水師. 등과 苦樂을 같이하면서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가려는 뜻이 있었다네. 그러나 생각하건데, 이 억압된 죄인이 어찌 감히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실상은 오직 先王의 영령이 미친 곳에 저 푸른 하늘 또한 나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신 듯하였네.
석양 무렵에 곧바로 濟州城의 禾北鎭 아래 당도하였는데, 여기가 바로 下船하는 곳이었네. 그런데 그곳에 구경나온 제주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북쪽의 배가 날아서 건너왔도다. 해뜰 무렵에 출발하여 석양에 당도한 것은 61일 동안에 보기 드문 일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오늘의 풍세가 배를 이토록 빨리 몰아칠 줄은 또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였네. 그래서 내 또한 스스로 이상하게 여기었는데, 이것은 나도 모르는 가운데 또 하나의 험난함과 평탄함을 경험한 것이 아니겠는가.
배가 정박한 곳으로부터 州城까지의 거리는 10리였는데, 그대로 화북진 밑의 민가에서 유숙하였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城을 들어가 아전이 고한익의 집에 주인 삼아 있었는데, 이 아전은 바로 前等의 이방이었는 바, 배 안에서부터 고생을 함께 하며 왔었네.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인데다 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뜻이 있으니, 이 또한 곤궁한 처지로서 감동할 만한 일일세.
大靜은 주성의 서쪽으로 80리쯤의 거리에 있는데, 그 다음날에는 큰 바람이 불어서 전진할 수가 없었고, 그 다음날은 바로 그 달 초하루였었네. 그런데 이날은 바람이 불지 않으므로 마침내 금오랑과 함께 길을 나섰는데, 그 길의 절반은 순전히 돌길이어서 人馬가 발을 붙이기가 어려웠으나, 그 길의 절반을 지난 이후로는 길이 약간 평탄하였네. 그리고 또 密林의 그늘 속으로 가게 되어 하늘 빛이 겨우 실낱만큼이나 통하였는데, 모두가 아름다운 樹木들로서 겨울에도 새파랗게 시들지 않는 것들이었고, 간혹 모란꽃처럼 빨간 단풍숲도 있었는데, 이것은 內地의 단풍잎과는 달리 매우 사랑스러웠으나, 정해진 일정으로 황급한 처지였으니 무슨 운취가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