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20

clara jeon 2018. 8. 20. 19:01

   추사가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자신의 병든 모습을 세세히 표현한 글들이 무수히 많아, 푸른 바다 넓은 하늘에 한스러움만 끝없이 사무치는 시련의 나날들에서 추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혹독하게 추웠었나를 스산하게 짐작할 수 있다.(필자 논문, [세한도]에 침윤(浸潤)된 미술 치유성, p.?) 더욱 가슴 아픈 일은 1842년 11월 13일 남달리 금실이 좋았고 귀양살이의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주던 賢母良妻 예안 이씨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추사가 아내의 부음을 들은 날이 한 달 뒤인 12월 15일이었으니, “나는 형틀이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매자 해도 길이 없으니”, 마음길이 막힌 추사는 막막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고 처연한 哀逝文을 지었다.([완당평전]1.p371) 다음의 글은 추사의 애서문으로 내용이 그의 유배 삶이 전반적으로 드러나 있고 행간과 행간 사이에 非夫의 緘默의 서러움을 들여다 볼 수 있어 그 일부를 수록한다.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

임인년 11월 乙巳朔 13일 丁巳에 부인이 예산의 집에서 일생을 마쳤으나 다음달 乙亥朔 15일 己丑의 저녁에야 비로소 부고가 海上에 전해왔다. 그래서 지아비 김정희는 位牌를 설치하여 곡을 하고 生離와 死別을 비참히 여긴다. 영영 가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면서 두어 줄의 글을 엮어 본가에 부치어 이 글이 당도하는 날 제물을 차리고 靈几 앞에 고하게 하는 바이다.
어허! 어허! 나는 형틀이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매자 해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어서는 안 될 처지인데도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없는 원한을 품어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겠기에 형틀보다도, 큰 고개와 큰 바다보다도 더욱더 심했던 게 아니겠소.......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뻔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

    [세한도]는 이처럼 절도 위리안치의 유배 형벌로 정치권에서 抽出된 처연한 緘默의 ‘추운’ 스승을 늘 의리와 인정으로 支持해준 제자 ‘藕船에게 是賞한 그림이다. 藕船 李尙迪(1804-1865)은 詩文에 능한 文氣있는 중인계급출신으로 사신을 따라 중국을 열두 차례 왕래한 당대의 名譯官이었다. 그는 청나라를 오가며 추사가 다년간 보고자 원하던 당시 청조 학자들의 신간을 구하여 海濤萬里 제주로 보내드렸다. [세한도] 발문에 언급되는 『문편』이라는 책은 자그마치 총 120권, 79책이고, 이외에도 이상적은 스승의 학문과 예술 탐구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다. 그 일편단심의 고마움이 추사의 유배인이라는 恨의 감성을 자극, 추사로 하여금 [세한도]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動機誘發, 창조케 하였던 것이다. 추사는 人福이 있었든지 평상시의 “기품이 훤칠하고 기상이 온화하여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모두를 즐겁게 했으나 義나 利 분변함에 이르러서는 번개와 칼끝으로 가르듯 의논이 분명하여 감히 막아선 자가 없었다.”(이선경飜譯,완당선생경주김공휘정희묘,[추사연구]2,p279)의 추사의 성격 탓인지 10여 년의 유배 기간 중에 초의, 허소치, 강위 등 친지와 제자의 방문을 받았다. 추사는 다가오는 새 시대를 예감하고, 『藝林甲乙錄』에 보이듯이 일찍부터 신분차별의 장벽을 넘어 재능 위주로 제자를 길러내어, 그의 문하에는 진보적 양반자제는 물론 중인과 서얼 출신의 영민한 제자들이 끊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