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12

clara jeon 2018. 8. 20. 18:09

김홍근의 상소가 올라온 바로 그날 7월 10일, 대왕대비는 김홍근의 상소 意志대로 “당률(當律)을 빨리 시행하는 것은 주상(主上)의 성효(聖孝)”인지라 김노경의 관작을 追奪, 7월 12일에는 추사와 동생 명희의 관직이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하교로 削奪되었다. 순원왕후의 철렵 전에 급속히 처리되어진 추사가의 정계에서 완벽한 逐出 墜落, 월성위가는 안동김문 파벌당의 우두머리 순원왕후 하교로 멸문지경이 되었으나 추사와 추사의 형제들의 목숨은 扶持하고 있었다. 단 삼일 만에 추사가를 정계에서 滅門化 해야지만 안동김문에게 월성위가 경주일문 추사가는 안동김문과 그리고 안동김문과 유착한 勢道를 隨時 위협하는, 막강한 유력성관 왕가의 위세, 꺽을 수 없는, 放心할 수 없는 정적이었다. 온갖 비리의 세도로 富貴榮華를 盜賊한 자는 그를 불의와 不道德으로서 지켜내고자 함이니, 때를 보아 憤氣하여 자신들의 勢道를 반드시 위축시킬 추사일가를 정계에서 축출하는 것만으로 안동김문은 이 사건을 마무리할 리가 없었다. 이 탄핵상소를 계기로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의 수렴 뒤에서 안동김문 勢道파벌은 대왕대비의 위세로 월성위가 경주일문 추사가를 滅門滅族 다시는 後患없는 마무리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 연유로, 김홍근의 탄핵상소는 모략적일 수 밖에 없었고 안동김문의 음흉한 은밀한 작심, 순원왕후의 刑罰 하교, 단 삼일 만에 추사가는 추탈. 삭직, 김홍근의 탄핵상소는 안동김문에 의해 事前準備 각본이었다. 경주김문을 추탈과 삭직으로 멸문까지 몰아갔으니 이제 안동김문이 마무리해야 할 일은 추사와 남은 형제들의 멸족, 즉 賜死였다.
    추사가를 멸문멸족 하기 위한 윤상도의 옥사는 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김홍근 탄핵상소 올려진 그날로 순원왕후의 국문이 하교되었고 윤상도는 곧바로 추자도에서 압송, 국문을 당한 한 달 후, 효명세자를 무함하였다는 대역부도로 陵遲處斬되었다. 그러나 윤상도의 상소에는 효명세자에 대한 무함이 단 한 글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상도 본인은 대역 죄인으로 능지처참되었고, 지족들도 몰살, 연좌자들도 유배를 보낸, 사건이 발단된 지 한 달여 만에 끝을 본, 이 윤상도 옥사에 개입한 안동김문의 저의는 윤상도의 국청에서 밝혀진다. 鞠問 중에 윤상도는 자신을 탄핵상소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한 자는 허성이라 자백하였다. 그리고 허성을 唆囑한 자는 대사헌 김양순이라 하였으니, 1830년, 순조 30년, 그 당시 안동김문 김양순은 김노경 처벌 선두에서 신료들을 연명상소, 연명차자 연판하여 결국 순조를 굴복시켜 김노경을 고금도로 위리안치한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이었다. 그리고 3년 후, 김양순은 1833년 이조판서로 승진되었다. 실토한 윤상도는 능지처참으로 죽고, 이어 배후에서 사주한 *김양순은 국문이 진행되는 중에 죽어버렸다. *각주: 헌종실록 7권, 헌종 6년 8월 27일 갑신 2번째기사 1840년 청 도광(道光) 1840년 청 도광(道光) 20년 국청 죄인(鞫廳罪人) 김양순(金陽淳)이 죽었다. 김양순은 허성(許晟)이 끌어대었는데, 여러 번 고문받았으나 승복하지 않고 죽었다.鞫廳罪人金陽淳物故。陽淳爲許晟所引, 屢被拷掠, 不服而死。
   필자는 김양순이 윤상도 탄핵 상소에 배후인물이라 지목되고 국문으로 綻露, 이 탄핵에 연루된 안동김문이 국문이 진행되는 과정에 고위층 唆囑人이 綻露날 것이 確實하므로 성급히 윤상도와 그 일배들을 처벌하였다고 추정하는데, 이를 確然시 하는, 자신이 윤상도의 배후 조종자라고 실토했던 *허성도 3일 후에 사형에 처해져 죽었다.*각주: 헌종실록 7권, 헌종 6년 8월 30일 정해 2번째기사 1840년 청 도광(道光) 1840년 청 도광(道光) 20년
모역에 동참한 죄인 허성(許晟)을 죽였다. 윤상도(尹尙度)의 상소는 허성이 부추긴 것인데, 정상을 알았다고 승복하였다.誅謀逆同參罪人許晟。 尙度疏, 晟所嗾也, 以知情承服。
    1840년 헌종 6년 7월 10일, 안동김문 김홍근의 상소로 시작하여 동년 8월 30일 허성이 죽기까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이 사건에 연루된 죄인 모두가 죽임을 당하고 오로지 추사만이 살아남은 윤상도 옥사, 이 사건을 추이하자면 안동김문으로서는 윤상도 일배만 처벌하는 것으로 끝이 났으면, 사안은 종결되었다고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