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10

clara jeon 2018. 8. 20. 18:02

   한 인간의 표면적인 행동성에는 반드시 그를 발현하게 하는 억눌린 무의식, 그의 내면적 무의식층의 心思가 함의 반영 되어 있듯이 안동김문의 실력자로서 요직을 망라한 김홍근이 “신은 이제 벼슬에서 물러갈 것이므로 조금 먼저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말할 수 있는 날이 없을 것이므로, 감히 목욕 재계하고 아룁니다."라 다지며 이 장장의 서론에 언급한 헌종의 강학 태도에 대한 비판. 염려. 권학, 이 표면 속에 담긴 구사량의 무리는, 배척당한 유생은 누구일까를, 김홍근이 포장한 헌종의 염려 하는 듯, 그러나 진작 그가 겨누는 화살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후학들은 이 상소를 읽으면서 당연히 추리하게 된다. 헌종 주변에서 헌종이 강학에 몰입하게 하지 못하게 방해하여 國基와 임금의 氣像을 혼탁하게 하는 구상량과 같은 환관의 무리,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김노경 지목에 필자는 안동김문의 의도, 정계에서 완벽하게 추출하지 않으면 자파의 입지를 항상 위태롭게 위협하는 有力姓慣, 政敵, 王家의 近親, 경주 김문을 향한 卽殺화살, 그 隱密, 內密한 음흉한 흉계를 읽을 수 있다. 즉 순원왕후가 撤簾을 하고 나면 헌종의 측근에서 임금의 어진 뜻을 펴지 못하게 儒生들의 접근을 배척하는 하는 아첨 환관 구사량의 무리, 효명세자와 헌종의 춘방에서 輔德을 補導한 경주김문을 구사량의 환관의 무리라 빗대어 김노경을 그 우두머리로 지적, 헌종이 순원왕후가 철렴을 하고 친정을 하자마자 안동김문의 勢道 構築 確保을 더욱 다지기 위하여 바로 근친 월성위가 경주김문을 추출하여만 한다고 안동김문을 대표하는 김홍근이 대사헌 辭職을 걸고 헌종에게 을러대며 위협을, 목욕재개 淸儒의 상징을 담아 공손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느닷없이 김노경과 윤상도를 천하의 역적으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참으로 희한한 說로 이 둘을 엮는데 청요직인 대사헌 김홍근의 논지가 奇想天外하다. 김홍근은 이들 죄인들을 순조가 재임 중에 처단하지 않은 것은 대성인(大聖人)인 순조의 지극히 정미(精微)한 의리가 전하를 위해 두 역적을 남겨 두어 전하로 하여금 이 두 역적을 징토하여, 대의(大義)를 현명하게 함으로써 전하의 효성이 빛나게 하려함에 있으니, 영조. 정조. 순조. 익종 전대 왕들이 처리하지 못한 죄인들을 당대에 주벌을 시행하였듯이, 이 두 역적 김노경과 윤상도는 순조의 죄인이고, 훙서한 익종의 죄인이니 前聖의 대의, 종사의 萬世를 위하여 이 죄인들을 後聖의 효성의 도리로, 하루 속히 처벌해야만 한다, 라고 헌종을 다구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풀이하자면 순조가 이 둘을 처단하지 않고 미진하게 남겨 둔 이유가 헌종이 현명히 김노경과 윤상도를 징토하게 하여 효성을 빛나게 하려고 함이라 하니 황당하기가 有口無言일 따름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순조는 윤상도의 사안을 “저와 같이 시골 구석의 어리석은 부류가 어떻게 스스로 분별할 수 있었겠는가? 如渠鄕谷愚蠢之類, 豈能自辦?” 라 극언을 하며, "그대는 당장 처분하겠다.爾則當處分矣."라고 비답을 내리고 곧바로 추자도로 유배를 보내버렸다. 그리고 또 다른 별개의 김노경 사안은 안동김문에게 “翼宗四奸臣”으로 몰리고 있는 김노경을 “保世臣”으로 안동김문의 공세에서 보호하려다, 안동김문과 그리고 그들과 유착하고 있는 영, 좌.우정, 삼사,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 聯名箚子 합계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김노경을 고금도 위리안치 유배 보낸 것으로, 이 사안들은 이미 순조 당대에 마무리 지어졌었다. 단언하면 이 어처구니없는 대사헌 김홍근의 靑山流水의 탄핵상소에서 겨눈 핵심 대상은 김노경이나 김노경은 이미 죽었으니 실은 경주김문의 좌장 아직도 살아남아있는 추사 김정희이다. 그리고 윤상도는 경주김문 일문, 추사일가를 죽이기 위한 낚싯밥, 엑스트라extra, 희생물에 불과하다.
    새삼스럽게 윤상도와 김노경 사안을 하나로 얽어 김노경의 처벌을 재론 탄핵한 대사헌 김홍근은 당시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과 함께 안동김문의 중심인물이었다. 순조 29년 10월 12일 儒生應製에서 수석을 하였고, 直赴殿試로 성균관에 入學할 때에 特命이 있어 며칠 후인 10월 19일 부교리에 제수된 首材로, 대사성·이조참판·홍문관부제학. 이·공·병조 판서. 홍문관제학·우참찬 등의 요직을 總網羅하였다. 안동김문의 威勢로 안동김문의 座長으로서의 김홍근이 대사헌에 임명된 지 불과 열흘 만에, 사헌부 言諫職 首長의 책임감으로 두 번 다시 아뢸 기회가 없을 거라는 각오로 사직서와 함께 제출한 “....而臣今告退, 言之差先。 及今不言, 更無可言之日, 乃敢齋沐而陳之。" 이후, 김홍근은 사직은 커녕 오히려 의정부 좌참찬, 좌의정 요직으로 초특급고속 승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