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燕京 見聞(연경에서 만난 스승&학우)-11

clara jeon 2018. 6. 21. 19:40

(6) 李鼎元, 李林松, 洪占銓, 金宜園, 金近園 
    

    李鼎元: 이정원의 자는 和淑, 호는 墨莊, 師竹齋로 건륭 43년(1778)에 진사에 급제, 三甲 중 한 사람으로 전시에 합격, 2년 후에는 오키나와에 사절로 가서 1년 간 부사의 소임으로 머물면서 <奉使琉球圖>를 그리고 [使琉球記] 1권, [琉球譯] 1권을 저술했다. 이듬해 가경 6년, 유리창의 오류거 서점에서 박제가와 유득공을 우연히 만났는데, 묵장과 초정은 건륭 14년 동갑으로 운치있는 시를 주고받으며 선비들의 깊은 우정의 묵연을 맺었다. <묵장을 생각하며 懷墨莊>의 초정의 시에는

묵장은 나의 동갑으로,
장년을 막 넘겼다.
세상살이 이야기하며,
공부가 이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아첨하지도 않으며,
자연 따라 지내고 있다.(후지츠카, p214)

위의 시에서 이정원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데, 그의 호 師竹齋의 의미인 竹解虛心是吾師, 마음을 비우고 겸손히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天然함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묵장의 인품은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에서도 성리학의 말류로 낙후된 조선 학예계에 직설과 독설로 맞선, “1000년 뒤에도 1000만명의 사람들과 다른 한 사람”인 자유인 초정과 의기투합했으리라 보아진다. 더구나 초정과 묵장은 건륭 14년 동갑네였다. 이러한 묵장의 풍아한 인품과 운치 있었던 시 모임을 초정은 그의 영민한 제자 추사에게 소개하였을 것이고, 추사는 당연히 法源寺로 묵장을 찾아뵈었다. 그 당시 62세인 묵장은 초정의 제자 추사에게 <登垈圖> 등의 그림을 보여 주며 이미 세상을 떠난 초정을 그리워하였을 것이다. 초정, 묵장, 추사로 이어지는 묵연은 <李墨莊獨行小照>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그림은 묵장이 초정에게 선물한 그림으로 훗날 초정의 아들 長馣의 부탁으로 추사는 제시를 쓰게 되는데 이들 묵향의 영혼들은 정겹게 시서화의 담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李林松: 옹방강의 문인인 이임송은 호는 心庵이다. 추사가 주야운에게서 모. 주 선생 입상도를 선물 받은 곳인 진돈재가 심암의 서재이다. 심암은 추사가 연경에 체류하는 동안 담계와 완원을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항상 함께 동행하여 추사와 연경 석학들과의 인연 맺음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한 심암의 돈독한 情誼에 추사는 심암의 매화소폭시에 매화꽃 향내 어린, 매화꽃보다 바탕 고운 시 한수를 제하였다. 연경 체류 내내 함께한 眞智한 심암의 향기서린 풍아한 품성을 추사는 “그림 속 향기”로 花答하고 있다.

이심암의 매화소폭시 뒤에 제하다

꽃을 보려면 그림으로 보아야 하니,
그림은 오래가도 꽃은 쉽게 시들어서다.
더욱이 매화는 바탕이 경박해서,
바람과 눈 날리면 함께 날아간다.
이 그림은 수명이 오백 년을 가,
이 매화 보노라면 다시 신선이 되리라.
그대는 보지 못했나 시 속 향기가 그림 속 향기라는 것을,
꽃은 그려도 향기 그리기 어렵다 말하지 마라.(후지츠카, p210-211)

   洪占銓: 홍점전의 호는 介亭이며 담계가 인정한 제자로 추사는 담계의 아들 성백의 소개로 개정을 알게 된 것으로 보이며, 추사와의 교류로는 단지 개정의 말을 언급하며 쓴 글만이 남아있다. 이 글로 보아 추사는 담계에 대한 이력이나 석묵서루의 수장품에 대한 내력을 또는 견문 후의 감동을 개정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누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스승이 직접 저술한 책은 2,000여 종이 되는데 이는 전에 없었던 일이다. 석묵서루에 소장되어 있는 금석류는 8만 권이다.(후지츠카,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