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燕京 見聞(연경에서 만난 스승&학우)-12

clara jeon 2018. 6. 21. 19:41

金光悌, 金宜園, 金近園: 김광제의 호는 난휴, 자는 汝恭으로 건륭 연간에 진사에 급제, 당시에는 형부상서로 의원과 근원은 광제의 아들로 추사는 연경 석학들과의 만남 중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난휴의 집은 정원과 연못이 있는 풍치있는 저택으로 문인들의 文士觴詠의 장소로 유명하였다. 이 풍치있는 정원과 연못에 대하여 幹邨 楊道生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구름이 사뿐히 날고 짙푸른 빛이 교차하였다. 새는 그윽히 지저귀고 냇물은 졸졸 흐르며 달은 동쪽에서 솟아 숲 위로 서서히 올라오고 산들바람이 불며 서늘한 그림자가 갑자기 졌다. 대나무와 바위를 바라보니 짙푸르고 깍아지른 절벽에 앉아 있어서 그윽함이 끝이 없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자 산 여기저기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성긴 주렴은 안개를 가로막고 신선한 바람에 이내 상쾌해졌다. 아침 해가 희미하게 비치며 푸른빛이 저절로 무르익고 산과 숲은 저마다 환희를 나타낸다.(후지츠카, p219)

연경 학자들과 만남의 마지막 일정을 이 정경 속에서 난휴와 문장과 시를 주고받았으니, 추사의 연경 방문은 평생 배움의 학예인으로서 의욕을 북돋아주는 文字香, 書卷氣 삶의 淸高古雅한 날들로 點綴되었다. 귀국길에 오르기 전 1810년 2월 1일, 완원, 이정원, 조강, 주학년, 이임송 등이 참석한 餞別宴에서 주학년은 고목과 怪石들이 아름다운 운치 있는 북경 법원사 별채에서의 송별연 정경을 즉석에서 그리고, 참석한 이들이 지은 전별시를 기록한 <秋史餞別圖>를 첩으로 꾸며 남겼다. 비장되어 있는 법서, 깊숙히 수장되어 있는 진본, 고비, 탁본 등을 보여준 거장 담계, 완원, 그리고 오랫동안 소망하던 홍유들과의 학문의 교류로 “慨然起別想 四海結知己 如得契心人 可以爲一死 日下多名士 艶羨不自已”의 꿈을 이룬 추사는 이 눈부신 날들을 명사들에게 감사하며, 그와 墨緣을 맺은 名賢들의 학예 특징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그들의 진심어린 眷愛의 정, 돈독한 情誼를 감사의 송별시로 화답하였다.

내가 북경에 들어가 제공들과 사귀기는 했으나 시로써 우정을 다진 적은 없다. 돌아올 무렵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어  一내려 쓴다.

九夷에서 태어난 나는 참으로 촌스러워,
중원의 선비들과 사귀는 것이 참 부끄럽다.
누대 앞 붉은 해는 꿈속에도 밝아,
소재 문하에서 삼가 제자의 예를 올렸다.
오백 년이 지난 이날에,
천만 인을 거쳐 선생을 뵈었다.
芸臺는 그림 속에서 본 그분이었으니,
경적의 바다이고 금석의 府庫였다.
흙의 변혁도 貞觀의 銅은 삭히지 못해,
허리춤에 천 년 묵은 작은 비를 차셨다.
<화도비>는 진돈재에서 처음 보아서,
담계와 운대의 인연이 되었다.
그대는 푸른 바다 고래 끄는 솜씨라면,
나는 신령한 마음을 갖고 있다.
野雲의 오묘한 필치는 천하에 알려져서,
일찍이 해외에서 <句竹圖>를 보았다.
더구나 옛사람은 밝은 달과 같은데,
선생의 손끝에서 이내 나타났다.
옹씨 집안 형제는 쌍벽을 이뤄,
평생 古錢癖을 버리기 어려웠다.
영지는 뿌리가 있고 醴泉은 근원이 있어,
질탕의 풍류는 격이 한충 높았다.
<酒德頌> 지은 劉伶을 가장 사랑하고,(三山, 劉喜海)
이따금 한 번씩 적중하는 徐邈,(夢竹, 徐星伯)
명문가의 자제 曹玉水,(江)는,
가을 물을 정신으로 옥을 골수로 삼고 있다.
담계 문하 高弟들은 지극히 맑고 진실해서,
써 내린 장편 노래는 글귀마다 신이 담겼다.(介亭, 洪占銓)
생각해 보면 처음 서로 만났을 땐,
만남만 있을 줄 알고 헤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내 이제 발길 돌려 만 리 길 떠나면,
땅 모서리 하늘 끝 방 안에 있으리라.
조물주의 교활한 농락이 밉기만 해,
사람들은 둥근 걸 좋아하나 이내 이지러지는 걸 보인다.
연운이 눈앞을 지나고 눈이 발톱에 남아도,
그 가운데 마멸되지 않은 것이 있다.
龍腦는 모름지기 공작꼬리 끌어오고,
비파는 蕤賓의 철과 호응한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넋으로 이별할 뿐이나,
압록강 물 술을 빚어 술잔으로 말리리라.(후지츠카, p229-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