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燕京 見聞(연경에서 만난 스승&학우)-5

clara jeon 2018. 6. 21. 19:21

(3)翁方綱
    추사가 60일간 연경에서의 짧은 체류 기간 중, 옹방강과 완운대와 맺은 학연이 조선 학계에 미친 영향을, 후지츠카 치카시는 그의 박사 논문에서 “특히 박제가의 제자로 조선 500년 역사상 보기 드문 英才 완당 김정희가 출현하여 연경에 가서 옹방강과 완원, 두 經師를 알게 되고, 여러 명현들과 왕래하여 청조 학문의 핵심을 잡아 귀국하자 조선의 학계는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빠른 진전을 보여 500년 내로 보지 못했던 진전을 보게 되었다.” 라 논지하였다. 이 글이 의미하는 바는 추사가 청나라 경학의 대가인 옹방강과 완원을 만남으로서 청조 학문의 핵심을 꿰뚫어, 停滯, 遲滯 되어오던 조선 500년의 학예 문물 문화를 진전시킨 역사상 미증유의 학자로 대성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그의 연구의 실증인 것이다. 이는 후지츠카 치카시 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추사 연구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최완수, 이동주 역시 추사의 연경에서의 학연이 조선 후기 학예문화의 ‘완당 바람’의 前哨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하다면, 추사 학예의 전환점의 계기, 그 기틀을 제공한 담계를 이 글에서는 심도 있게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한 인간의 삶에서 삶의 전환점을, 더구나 학문과 예술의 정신적인 世界의 지평을 至高하게 그 영역을 확장하여 주었다면 별도의 큰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고 보아진다. 따라서 우선, 추사에게 연경 학자들의 실사구시적인 학문 경향을 가르쳤으며, 독자적인 北學이라는 학문 영역을 구축한 *추사의 스승 박초정(몇 몇의 논자들은 초정을 스승으로 인정하지 않는 담론을 펴고 있으나 이 논문에서는 다수의 학자들의 연구물을 근거로 초정을 추사의 제자로 인정함을 기반으로 논술한다.)과 옹담계의 만남과 초정과 완당, 그리고 방문한 많은 학자들에게 감탄과 眼福, 더 나아가 조선 학예를 開眼하게 한 옹방강의 寶庫 石墨書樓에 대해 서술한다.

(3-1)옹방강과 초정, 그리고 완당
   옹방강(1733-1818)은 자는 正三, 敍彝, 호는 覃溪, 彝齋로 건륭 17년에 20세 나이로 진사에 급제, 건륭 38년 翰林院 編修가 되어 [사고전서] 편찬에 참가했다. 이어 文淵閣 敎理官, 四庫書分校官, 典試, 國子監, 司經局 洗馬로 발탁 중용되었고, 順天鄕試 副考官, 少詹事, 視學 등을 역임하였다. 1796년 가경 원년 64세에는 천수연을 하사받았으며, 가경 4년에 鴻臚寺卿을 제수, 72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泮林에 부임했다. 가경 12년 75세에는 三品銜을 하사 받았으며 거듭 鹿鳴宴에 참가했다.
    초정이 옹방강을 만나 翰墨의 인연을 맺은 시기는 가경 6년 1801년으로 이미 그는 詩書畵로 연경의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초정과 일행이었던 四檢書,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가 만난 청조 문인들은 당대 최일류급 인사들이었다. 담계와 초정이 만난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는 않으나 초정이 담계를 향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담은 시들은 남아있어 그들이 나눈 翰墨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초정은 옹담계의 <落葉試券>를 차운해 시를 지었는데, 초정은 담계에 대한 그리움을 <丹靑記>의 왕유 고사를 들어 비유하였다.

네게 시를 쓰는 것은 붉은 꽃에 못지 않으니,
다정한 이들이 각각 동서로 나뉘었다.
어찌하면 王維의 돌을 만들어,
만리 바람에 扶桑에 실어 보낼까.(후지츠카,p151)

   또한 초정은 귀국 후에도 이따금 자신의 심정을 시로서 옹담계에게 보냈는데, 이 시에서는 초정이 연경 학자들과의 행적을 엿볼 수 있다.

금석은 호젓이 세상에 나오고,
손수 쓴 장가는 구절마다 신묘하다.
나눈 청담은 한층 격이 높아서,
소재 문하에서 시봉한 사람이었다.
담계는 洪趙의 유파로,
금석에는 미세한 것까지 파헤쳤다.
십이월 십구일이 되면,
향을 사르면 동파에게 제를 올리신다.
나를 이끌고 淸閟閣에 오르고,
명사들과 만나 고담도 나누었다.(후지츠카,p153)

위의 시에서의 명사들은 조강, 이조원, 오숭량, 섭지선, 이월정, 왕맹자 등으로 추정된다. 훗날 초정의 셋째 아들인 朴長馣이 부친 초정을 기리기 위하여 펴낸 <縞紵集>에는 초정과 교류한 청조 문인이 무려 172명이 나온다.(유홍준,[완당평전]1, p74) 초정의 시에는 석묵서루에 대한 언급도 있어 그가 귀국 후 추사에게 청인의 문인들과 석묵서루에서의 학연과 안복의 경험담을 披瀝하였음은 당연하다. 또한 자신의 영특한 제자 김정희에 대해서도 소개하였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이는 담계가 추사에게 베푼 각별한 환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