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出生과 成長過程(4)

clara jeon 2018. 6. 15. 18:35

伏不審潦炎 氣候若何伏慕區區子侍讀 一安伏幸 伯父主行 汣今離發兩意未 己日熱如此伏悶命第 幼妹亦好在否與否備伏惟 下監 上白是 癸丑流月初十日子正喜是白
굽어 살피치 못하는 불볕 여름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그리운 마음이 절절하오나 소자는 독서에 여념 없이 편안하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부님께서 이제 행차하려시오나 장마도 그치질 않고 더위도 여전하니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어린 여동생과 아우는 잘 있는지요.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오니 굽어 살펴 주십시오. 계축년 유월 초열흘 소자 정희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완당평전]1, 재인용)

급히 쓴 짧은 편지임에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행간에 함축되어 있는 이 편지글은 글씨에도 각 획의 맺고 끊음에 힘이 들어간 楷書體에 이미 명필이 기상이 엿보이고 있다. 편지 내용으로 보아 추사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으나 일찍 여의었는지 족보상에는 기록이 없고, 추사보다 세 살 아래인 山泉 金命喜와 아홉 살 차이나는 막내아우 琴蘪 金相喜이 있었다. 이들 형제들은 詩書에 모두 이름이 높아 두 아우는 추사의 글씨를 빼닮아 낙관이 없으면 누구의 글씨인줄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다. 추사의 형제간은 사이가 남달리 敦篤하여 추사의 書簡文에서 이들 형제들이 집안의 모든 吉凶事에 평생을 같이 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추사는 조선 후기, 實學을 先進的인 開明한 眼目으로 받아들인 碩學으로 알려져 있다. 世間에서 흔히 膾炙되기를, 詩書畵文史哲을 섭렵한 추사의 학예를 단지 그가 청년시절 燕京을 방문하여 청나라의 대학자인 옹방강이나 완원 등과 인연을 맺고 그들과의 학문의 교류나 師承관계에서 학습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鄭寅普는 이러한 편견을 부정하고 있다. 이를『阮堂全集, 第一卷, 阮堂先生全集序』에 두 차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公幼挻異禀 父酉堂公 閎識求是 在家固己承藉父學 値
공은 어려서 특이한 자품을 타고난 데다 부친 酉堂公이 넓은 식견으로 실사구시의 학문을 하므로 말미암아 가정에서 이미 부친의 학문을 받았던 것이다(『阮堂全集, 第一卷, 阮堂先生全集序』).

弱冠隨父使燕交翁阮 嗣後往復至繁 世見基然也遂以爲自此得之 不知基早傳自家庭師友
공이 약관 시절에 사신 가는 부친을 따라 연경에 가서 옹방강. 완원과 교유하고 그 후로는 그들과 서신 왕래를 한 것이 매우 번다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서는 그 사실만 보고서 마침내 그의 학문이 여기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일찍 부터 가정(家庭)과 사우(師友)들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요, 그들을 힘입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阮堂全集, 第一卷, 阮堂先生全集序』).


위의 글에서 보여 지듯이 어린 시절의 추사의 학문은 부친 유당공 김노경의 在家 교육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추사의 어머니 기계 유씨 역시 기계 유씨가의 筆家歷을 이어받아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필력을 지니고 있어, 추사의 글씨체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