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出生과 成長過程(2)

clara jeon 2018. 6. 15. 18:30

   추사의 집안은 조선 후기 순조 연간의 세도정치 시절 安東 金氏, 豊穰 趙氏, 南陽 洪氏 등과 자웅을 겨루는 뼈대 있는 명문 가문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경주 김씨는 신라 金閼智의 후손으로 김씨 성의 大宗이다. 경주 김씨의 가문의 위상을 살린 이는 신라 憲康王 7대손 태사공의 8대손 桑村公 金自粹이다. 김자수는 麗末에 충청도 按察使를 지내다가 조선이 창건되자 安東으로 낙향하였는데, 이태조가 형조판서로 그를 초빙하자 자결하여 忠臣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킴으로서 杜門洞 七二賢 못지 않은 名賢이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서서 太宗의 一男인 棑의 曾孫婿가 되어 종실과의 重緣으로 더욱이 경주 김씨의 위상을 높인 이는 墁이다. 이 墁으로 인하여 경주 김씨는 충남 瑞山 大橋村(한다리)에 자리잡게 된다. 또한 조선조에 들어 처음으로 이름을 드높인 이는 만의 曾孫인 弘郁으로, 충청. 황해 觀察使를 역임도 하였으나 홍욱이 名臣이 된 이유는 높은 관직 때문이 아니라 姜嬪의 怨獄을 바로잡고자 올린 상소 때문이었다. 인조의 長子 昭顯世子의 비인 강빈은 소현세자와 함께 억울하게 賜死되었는데, 이 죽음이 인조의 第二子로 孝宗의 등극과 관련되어 있어 효종이 즉위하자 기득권 측에서는 함구하도록 하였다. 홍욱은 사림의 선비들이 모두 이 獄死가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伏地不動하고 있음을 개탄, 상소를 올렸으나 杖殺 당하고 만다. 그러나 당시 士論을 대변한 홍욱의 이러한 殺身成仁 義氣는 사림들의 존경을 받으며 자신과 경주 김씨의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게 된다.
    이후로 그의 후손들도 번창하여서 홍욱의 증손인 興慶은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들은 부사, 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특히 末子, 추사의 曾祖父 金漢藎은 영조대왕의 둘째딸인 和順翁主와 결혼하여 月城尉로 봉해지면서 왕실의 內戚 명문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김한신은 인물이 준수하고 聰明剛起하였으며 글씨를 잘 써서 諡冊文도 많이 썼고 전각도 잘했다고 한다. 영조는 이 사위를 寵愛하여 五衛都摠府, 都摠管, 濟用監, 提調 등의 요직에 봉하였을 뿐 만 아니라, 서울 통의동 월성위궁과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賜田으로 하사하고, 충청도 53개 郡縣에서 각 고을마다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시키어 53칸짜리 월성위 집안 향저를 짓게 하였는데, 이 집이 오늘날 예산 추사고택으로 추사는 이 향저에서 탄생하였다. 이처럼 경주 김씨 가문의 위용과 영광을 가져다 준 월성위 김한신은 불과 39세에 후사도 없이 요절하고 말았는데, 남편을 잃은 화순옹주는 열흘을 굶어 죽어 열녀의 길을 택했다. 이에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장문의 靈筵 哀悼文으로 갸륵하게 기리었으나 아비 말을 듣지 않고 죽음의 길을 간 딸에게 열녀문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후에 화순옹주의 조카 정조가 즉위하며 화순옹주를 조선왕조 400년 동안 최초의 왕실 열녀임을 칭송하여 열녀문을 내렸다. 월성위가 소생이 없이 세상을 떠나자 조카 金頤柱(1730~1797)를 양자로 맞아 家系를 이어가게 하는데, 이가 바로 추사의 할아버지이다. 영조는 외손자인 김이주를 비호하여 승지. 광주 부윤. 대사헌. 형조판서 등의 높은 벼슬을 주어 출세를 거듭하게 하였다. 더구나 김이주의 아들, 魯永. 魯成. 魯明. 魯敬은 수원판관, 이조판서 등의 관직을 임하여 집안을 안팎으로 번창하게 하였다. 이들 중 장남인 노영이 후사가 없어 추사는 여덟 살 무렵, 백부의 系子로 出系하여 嗣孫으로 月城尉家의 종손이 되었다. 추사의 생부는 末子인 노경으로 후에 이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추사의 양부와 생부  모두 大科에 급제하여 왕가의 內戚으로 출세가도를 승승장구하였으니, 추사는 학문과 권세가 드높은 왕가 內戚의 출신 배경으로 귀공자로서 典雅한 학예를 다질 수 있었다. 더욱이 순조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한 영조의 계비, 貞純王后는 추사의 11촌 대고모이고 그녀와 남매간인 김귀주, 사촌인 김관주 등이 추사의 할아버지 곧 영조의 외손주인 김이주와 같은 항렬의 친족들로 김정희 집안은 조선 후기의 왕실의 친족으로서 뼈대 있는 명문 가문으로 자리매김한다. 이상 유홍준[완당평전], 20160125 위키백과, 姜朱鎭 <僻派家門 出身의 秋史 金正喜>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