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法古創新(3)

clara jeon 2018. 5. 28. 18:29

일단 필자의 非科學的인 소견을 찰나적인 不立文字의 合理性的인 창조의 세계에서 진정성있게 露呈한다면, 추사에게 있어서의 현재에 到達한 창신과 현실의 실존과 접속하고 있는 법고는 兩極의 對立極을 소통하고 있는 文字의 직립과 不立文字, 不二의 경계인 것이다. 그래서 <불이선란도>의 제발이 제삼 제사 펼쳐질 수 밖에 없었고, 더 이상 언어로는 표출할 수 없는 불립문자의 心象을, 추사는 마침표 없이 含黙으로 이어지는 불이의 경계를, 말줄임표 하였다. 그러하다면 法古의 세계에서 創新으로 전환되는 그 찰나의 일치의 묘경의 깨침의 수련의 과정, 구천구백구십구분을 거의 가능하게 格物致知한 至高한 조선 선비로서의 전인적인 수행의 과정,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봉당붓으로 만든, 凡人으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 그러니깐 대충 알아 아는 척 하는 자들은 도저히 “좋다”, “별로다”의 可否를 결판 지을 수 없는 ‘불계공졸’, ‘大巧若拙’의 ‘虛和’의 경지를 ‘怪奇’하다고 無知의 폄하를 한 것이 아닐까. 필자의 소견으로, 추사의 허화의 아우라인 괴기스러움이 현대인의 味感, 美感에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는 연유에는, 추사의 예술적인 삶이, 실존의 직도이행의 본질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필사의 투쟁에서 自得한, 生存의 틀 안과 밖에서의 허화의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이라면, 추사 선조는 黙笑하시지 않으실까.
필자는 앞의 논술 Ⅲ. 추사의 교육관과 현대적 의미화1. 實事求是說 1)詩⦁書⦁畵에서의 실사구시적인 門逕論의 부분에서, 평생에 걸쳐 추구한 ‘古’와 ‘新’에 대한 추사의 장인적인 연찬의 과정을 살펴 보았다. 추사 학예의 道程의 요지는 추사가 제주 유배 중 어느 날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한 회고, “옛 經典을 좋아한다”의 ‘古’, 남이 한 말을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는 ‘新’의 경지가 “나의 평생을 다 드러냈다”, 一喝로 응축할 수 있다.

覃溪 翁方綱은 “옛 經典을 좋아한다”고 하였고, 芸臺 阮元은 “남이 한 말을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는데,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 드러냈다.

추사가 평생에 걸쳐 추구한 ‘古’와 ‘新’의 회통, 고와 신의 불이의 묘경, 법고창신 일치의 화두를, 추사는 학예를 일구는 군자는 일거수 일투족이 道 아닌 것이 없다는 淸淨心으로, 人品과 학예의 풍격이 實事求是의 격물치지로 일치된, 즉 올바른 법고를 통해서 근원적인 역사적인 結穴 속에서 참된 진리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적인 성령을 융합시켜 실존적인 맥락에서 진정한 창신을 이룩함으로써,([추사와 그의 시대],<추사 그림의 법고창신의 묘경>-<세한도>와 불이란도>를 중심으로, 강관식, p262-266) 不二의 경계로 所通達法하였다. 그리하여 ‘古’와 ‘新’이 直道로 회통, 전. 예. 해. 행. 초서의 법고창신을 아우른 文字의 直立으로 내재한 不立文字의 아우라, 含意의 매력으로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의미로 吸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