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가의 두 번째 家禍: 추사 제주도위리안치(윤상도의 탄핵 상소)-1

clara jeon 2018. 8. 20. 16:47


추사가의 두 번째 家禍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hwp


추사가의 두 번째 家禍: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 김우명이 김노경을 탄핵 상소를 올린 1830년 순조 30년 8월 27일 바로 그 다음 날인 8월 28일, 副司果 尹尙度의 탄핵이 올려 졌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이 상소가 도화선이 되어, 10여 년이나 지난 후에 추사가의 두 번째 家禍, 추사가 제주도로 위리안치 된다. 윤상도의 탄핵 상소는 호조판서 박종훈, 전 유수 신위, 어영대장 유상량을 겨누어 올려졌다. 이들은 추사가와 친근한 인사들이었다.(안외순,<추사 김정희 가의 가화와 윤상도 옥사>,[추사연구]4호,p274) 탄핵의 내용이 또한 김우명의 상소 내용처럼 탄핵 대상자들에 대한 뚜렷한 죄목이 지적되지 않는 비루한 것으로 순조는 이 탄핵 상소 모함 속에 저의가 있고, 사주하는 자가 있음을 짐작하고 윤상도를 추자도로 정배하라 하교, 윤상도는 추자도로의 유배형에 처해졌다.([완당평전]1,p241) 순조의 예측, “사주한 자”는 10년 후, 1840년 대사헌 김홍근의 윤상도·김노경의 처벌 상소로 再審, 鞠問 중에 밝혀지는데 당시 대사헌으로 재직하고 있던 안동김문 김양순이었다.  윤상도의 유배 후  일단락지어진 사건을 유난스럽게 김양순이 수장인 사헌부에서는 귀양 간 윤상도를 압송하여 국문을 실시할 것을 사간원까지 동조하며 주청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 탄핵건의 저의를 파악한 순조가 단호하게 윤허하지 않아 이 사건은 당시로서는 완결 되었다.
    필자는 1830년의 윤상도의 탄핵상소는 김우명의 김노경 탄핵과 동시에 경주김문을 철저하게 滅門死族하기 위하여, 김노경과 추사 주변의 친한 동료들 까지 얽어 들이자고 한 *안동김문들의 치밀한 협잡(각주: 이 상소에 대한 선조의 비답에는 “반드시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지휘하고 시키는 사람이 있어서 시기를 틈타 반란을 선동하려는 계획 必有叵測指使之人, 欲爲乘時煽亂之計,”라 하여 안동김문 김우명은 김노경을, 윤상도는 추사가와 친근한 인사들을 겨냥, ‘추사가 죽이기’ 도모하는 “지휘하고 시키는 사람”이 안동김문 일파임을 꿰뜷어 통찰하고 있음을, “반드시 헤아리기는 어렵지만”의 행간과 행간 사이에 함의하고 있다.)이었으며, 10년 후 재심 국문 중에 밝혀진 이 사건의 배후 조종자 대사헌 김양순은 윤상도가 살아 있는 한은, 자신과 안동김문이 이 사건을 사주하였음의 배후가 밝혀짐으로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윤상도를 다시 국문, 사사하여 안동김문 일문의 無事를 도모하였다고 推斷한다.
    1830년 탄핵상소가 올라온 당시에는 순조의 어진 판단과 비호로 추사가는 안동김문 독란에 의한 ‘추사가 죽이기’의 멸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윤상도가 상소를 올린 10여 년이나 지난, 1840년, 순조도 서거하고 경주 김문의 중심인물인 김노경이 죽고, 추사와 형제들, 근친 몇몇이 경주김문을 지키고 있는, 헌종 6년, 어린 헌종을 대신하여 안동김문 출신인 순원왕후가 근척들과 외척세도로 정국을 완전히 장악 운영하고 있던 攝政垂簾聽政期, 유력성관 정적인 경주김문을 몰아내기 適期, 안동김문은 그들에게 유착한 일당 관료들을 모두 동원, 10여 전의 윤상도 옥사에 추사를 배후 조종자로 몰아 국청을 열고 죽임에 이르기 까지 고문을 하고 제주로 위리안치 유배를 보낸다. 6조 판서, 양관의 제학, 양도의 감사 등 요직만을 섭렵한 부친 김노경의 榮華가 위리안치의 유배로 삭아진, 정계에서 도태되어지다 싶이 된 경주김문으로서는 추사가의 멸문멸족을 위해 총동원된 안동김문 일당의 공격, 주요관직을 모조리 專橫, 고위관료 삼사, 삼정승, 비변사 등을 瀆職한 압도적인 위세에 순조의 비호도 없는 실정에서, 비록 왕가의 근척 월성위가 경주김문 수장이었지만 이미 消盡된  權限으로는 추사는 대처할 수도, 탈출구도 없었다. 참으로 황당하게도 鞫問 중에 윤상도의 배후를 조종한 자는 안동김문의 대사헌 김양순으로 밝혀지자, 김양순은 안동김문 고위층 사주이겠지만 陰凶하게도 추사를 윤상도 옥사의 배후 조종자로 엮어 들인 것이다. 당사자인 추사의 “고금 천하에 어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 한 억울한 心思와 사건의 전개상황은 다시 상세히 서술하기로 하고 윤상도의 탄핵 상소문이 추사가의 두 번째 가화에 원인을 제공하므로 순조 비답과 함께 전문을 수록한다.

순조실록 31권, 순조 30년 8월 28일 계축 3번째기사 1830년 청 도광(道光) 10년

부사과 윤상도가 박종훈·신위·유상량 등의 처벌을 상소하다
이보다 먼저 부사과(副司果) 윤상도(尹尙度)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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