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 제주도위리안치 (윤상도의 탄핵 상소)- 2

clara jeon 2018. 8. 20. 17:34

"우충(愚忠)이 분격(憤激)한 바가 있으면 지위에서 벗어나는 데 구애될 것이 없고, 의분(義分)이 징토(懲討)하기에 시급하면 늦추면서 시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아! 호조 판서 박종훈(朴宗薰), 전 유수(留守) 신위(申緯), 어영 대장 유상량(柳相亮)이 예은(睿恩)을 저버리고 함께 악행(惡行)을 서로 구제하였으니, 그 행사(行事)를 추적하면 말하기가 추잡스럽고 그 설심(設心)을 논하면 죄 가운데 큰 것입니다.
저 박종훈은 이름난 조상(祖上)의 자손으로 전후(前後)하여 두루 드날렸던 〈벼슬이〉 진실로 어떠하였습니까? 저에게 있어서는 보답하기를 도모하는 도리가 의당 다른 사람보다 갑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의 타고난 성질이 교활하고 행실이 이미 요특(妖慝)하며 조백(糟粕)같은 문예(文藝)로 한 세대를 속이고 명예를 구하여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이를 질투하고 자기보다 나은 이를 싫어하여 남을 그르치게 하였으니, 고시(考試)한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온 방(榜)이 모두 사사로움을 따랐으며, 전선(銓選)한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모든 과(窠)를 전혀 공심(公心)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년에 오면서 이[蝨]처럼 권간(權奸)에게 붙어 파리처럼 부지런히 총리(寵利)를 경영하면서 권세 탐하기를 집안의 계책으로 삼아, 종기를 빨아주고 치질을 핥아주는 〈등의 극도로 아첨하는〉 것을 스스로 잘하는 일로 여기며 겉으로는 공경하며 경계하는 체 하면서 속으로는 간사하고 악독함을 품었으며, 좌우에서의 조종은 오직 김로(金鏴)에 의뢰하였고 억양(抑揚)과 진퇴(進退)도 오직 김로의 말을 들었으며, 몰래 여러 고을에다 뇌물을 바치도록 사주(使嗾)하여 한 사람 김로의 계학(溪壑)같은 욕심을 채우도록 해서, 나라를 좀먹게 하고 세상을 병들게 한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데도 단지 경미하고 잗단 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임금을 정당한 도리로 인도하게 하는 것이 성현(聖賢)의 가르침인데도 그는 바로 그것을 뒤집었으며, 임금을 섬기면서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신자(臣子)의 직분인데도, 그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나쁜 부류들과 체결(締結)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세력이 있는 사람을 의뢰하였으니, 계책을 삼는 것이 비루하고 없던 일을 새로 생각해 내는 것이 음험하여, 여러 가지의 기이하고 교묘한 짓들이 그의 손에서부터 나와 자못 조저(曹儲)를 텅비게 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또 들으니, 설인(舌人)에게 대하(貸下)한 은자(銀子)가 많게는 4천 냥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국가의 비용이 다 떨어지고 사무(事務)가 번거롭고 큰 때를 당하여 한 푼도 국가를 위하여 준비하거나 우려하는 마음이 없이 제멋대로 사용하여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하고서야 그만두려고 하니, 그 죄범(罪犯)을 추구하면 어떤 형벌로든지 처치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아! 저 신위는 교묘한 말과 보기좋게 꾸미는 얼굴로 오로지 남에게 잘 보이고 즐겁게 하기를 일삼아 기량(伎倆)은 본래 창가(娼家)의 묘동(妙童)과 같고 종적(蹤跡)은 자못 권문(權門)의 총례(寵隷)와 같아서 사람들이 침을 뱉으며 꾸짖는 바이니 진실로 책망할 대상이 못됩니다. 그러나 타고난 모습이 경박하고 타고난 성질이 음탕하고 간사하기 때문에 춘천(春川)의 지방관으로 나가서는 백성들에게 사납게 굴고 여색(女色)을 탐하여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으며, 강화 유수(江華留守)가 됨에 이르러서는 옛날의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백성들의 재물을 걸태질하고 여색을 탐하기를 또한 지난 날보다 더 심하게 하여, 재물이 많은 자는 탕패(蕩敗)하기에 이르도록 하고 딸이 있는 자는 눈치를 보아 도망하여 떠나므로 막중한 지역이 열 집에서 아홉 집은 텅비게 되었습니다. 저가 만약 한 푼이라도 보답하려는 정성이 있다면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 역시 그에게는 잗단 과실이며 기타 죄상(罪狀)으로 지극히 간교하고 흉측한 것은 신이 감히 조목으로 진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바로 온 세상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전파하는 것을 들으니 예후(睿候)가 대점(大漸)하기 하루 전에 도하(都下)의 신민(臣民)들이 초조해 하고 허둥대며 몸둘 바를 몰라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위는 술자리를 크게 마련하고는 널리 동류를 맞이하여다 금옥(金玉)을 자리에 내어두고 창기(娼妓)를 끼고 앉게 하여 주취(珠翠)가 자리에 빙둘러 있게 해서 해가 지도록 음탕하게 농지거리를 하였으며, 그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또 그날밤을 기약하도록 하였으니, 이런 일을 차마 할 수 있는데 무슨 일인들 차마 할 수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