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4) 家禍 -서론(16)

clara jeon 2018. 7. 31. 17:48

이 글을 읽어보면 졸기라 함은 죽은 자의 덕을 기리고자하는 성의와 심의가 있겠으나, 안동김문들의 농단으로 인사의 전횡으로 국세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어가고 삼정이 문란 민생의 삶이 塗炭의 늪에 빠져있음을, 民政의 혼미가 극에 달해 있음의 원인을 알고 있을 사관, 그 원흉이 김조순임을 指目하고 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집필진은 안동김문의 首腦 김조순을 “우리 태평 성대의 다스림을 돈독히 도울 수 있었다”라 한, 賞讚 一邊倒의 이 졸기의 전문에는 단 한 줄의 당대의 안동김문의 전횡, 독란, 농단을 행간과 행간 사이의 隱喩的含意로도, 사간으로서의 使命的 筆義는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사물이 없듯이 “백관(百官)을 총찰(摠察)하여 충성을 다하면서 한 몸에 국가의 안위(安危)를 책임졌던 것이 30여 년”, 이 기사에서 “한 몸”으로 “摠察”, 이 낱말의 內包의 함의에서 國舅로서, 안동김문의 首魁로서의 30여 년의 김조순이 주도한 안동김문의 파벌과 김조순 개인으로 누린 전횡적인 私利私慾의 富貴榮華를 추단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이 졸기의 極度讚揚은 오히려 외척세도기의 장동김문의 전횡을 한 획도 깃들게 할 수 없는, 종친인 이하전까지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의 농단과 독란을 비판할 수 없는 당대 일당 독재가 행하였을 언론 통제의 정황을 읽을 수 있다. 그 증거로 세도정국의 전면과 이면에서 안동김문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문집, 야담, 편지 등의 사료에서 안동 김문의 전횡에 대한 비판 인식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윤민경, 세도정치기 安東 金門의 정치적 기반 : 국왕, 유력가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2015,p.60) 권력의지를 담고 있는 담론일수록 항상 그 스스로가 가장 진리다운 것이라는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함의를 그 어딘가에 붙여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잘못 밝히면 권력의지는 진리처럼 더욱더 위선을 떨치게 된다.(한준상, [호모 에루디티오], 2000, 학지사, p.53)
    前述에서 경주 김문과 안동김문의 소략은 추사가의 가화를 벽파인 경주 김문과 시파의 안동 김문의 정치적 노선의 대립선상이라는 추정 하에 이들 가문의 심지(心志 心誌 )를 그려내고자 함이다. 다시 이 두 가문의 사상적인 心誌의 來歷을 한 마디로 함축한다면 ‘節義’이다. 경주김문 선조, 려말 선초의 김자수, 효종대의 김홍욱, 영조대의 김흥경, 김한신 등의 행적, 그리고 안동김문의 가풍과 종풍 역시 앞의 글의 기술에 보이듯이 척화의리의 ‘절의’와 도학. 문장을 구비한 정신적인 세덕으로 현창하였다.
    권력의지 스스로 자기만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또는 절대권력이며, 변하지 않는 본질이라고 내세우며 그런 토대 위에서 쾌락이나 풍요로움, 절대적인 안정을 취하려고 하는 그런 절대권력 행위는 그 스스로가 허구이며, 그 스스로가 위증이며, 그 스스로가 그럴 수 있는 위치가 아님을 겉으로 드러내 놓는 知的인 작업이 解體인 것이다.(한준상, [호모 에루디티오], 2000, 학지사, p.53)그러하다면 경주김문과 장동 안동김문의 권력 장악의 다툼에서 神似의 작업으로 知的으로 해체해야 할 것은 추사가의 가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에 함의 되어 있는 “권세는 길다, 허나 예술은 영원하다”의 해체 작업일 것이다. 또한 조선조의 선비로서 유학의 삼재를 갖춘 지성인의 최고직인 규장각 대교를 임직한 김정희, 김조순 이들의 학예적인 행보에서, 學藝人으로서 節義 . 直道以行 인간의 道理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걸은 진정한 승자가 누구였는가의 판가름의 知的 작업도 아울러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