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출세(9)

clara jeon 2018. 7. 6. 22:48

조선왕조는 국왕-비변사(묘당)-관찰사- 수령(군수 현감)順의 國命下達 中央集權 통치 구조로 300여 수령을 지방에 파견하여 왕권을 대행하게 하였다. 따라서 지방 수령들은 一道, 一郡, 一縣의 최고 통치자로서 이들은 국가 권력과 백성이 만나는 接點의 위치에서 중앙정부 권력의 위임으로 강력하게 民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조선후기 지방행정에 있어서의 수령의 역할과 부패 유발], p2)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부여된 행정 통치 全擔의 재량권을 과도하게 濫用, 民을 탄압하는 폭정으로, 혹은 不正腐敗化 되어 邑弊民瘼을 조장, 백성의 삶을 疲斃化 하는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나라의 통치의 궁극적 목표가 국가 존립의 기초인 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 육성하고, 국가 존립에 필수적인 물적,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라 할 때, 이들 수령들이야말로 일선에서 이러한 일들을 직접 담당 수행하던 핵심 관원으로, 그들을 “牧民官”이라 호칭한 연유도 이들이 民의 편에서 民의 안정된 삶을 보살피는 牧者라는 의미인 것이다(조선 후기 암행어사제를 통한.... p88)그러나 특히 추사가 살던 조선 후기 순조 대에는 순조의 처가, 외가인 안동 김씨. 풍산 홍씨, 풍양 조씨들이 국정을 장악한 ‘세도정치기’로, 이들이 不正腐敗의 부정직한 방법으로 고위 요직을 차지하여 정국의 주도권 장기 집권하면서 정치 기강은 문란해지고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체제는 점차 붕괴 되어갔다. 특히 이들 권문세도가들의 국정 壟斷·隴斷은 人事 登用에 관여, 自派의 세력을 형성하여 이들이 등용시킨 지방 수령들의 행정 부조리는 군, 현, 읍에 까지 영향을 미쳐 三政紊亂 등의 非理가 만연 하였다. 권문세도가들의 세력 확장, 부의 축적을 위하여 지방 탐관오리들은 民生을 수탈할 수밖에 없었고, 收奪物들을 세도가들에게 阿諂 賂物로 上納, 탐관 자리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악순환은 三政을 근간으로 暗暗裡 행하여져 수취체제의 문란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조선시대의 암행어사의 제도], p66).
다음은 極端에 처한 순조 대의 민의 실태 기록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세도가 안동 김문의 김조순이 1824년 관서 지방을 여행하다가. 환곡과 대동미의 수취체제의 폐단으로 인한 서하(西下) 지방의 民間疾苦를 순조에게 보고한 내용 중 일부로, 당시의 수취체제 폐단의 극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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