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 : 翁方綱 (5)

clara jeon 2019. 1. 12. 17:10

      다음 서독들은 앞의 1815년 10월 14일자 편지글과 내용은 다르나, 그 기본 취지는 별반 다르지 않아 위의 서술과 연계되는 부분만을 발췌하며, 그 내용이 平心精氣 博學篤行의 학자의 도리로 經學의 門外漢도 이해가 가능하므로 敷衍하지 않는다.

義理의 학문이 있고 考證의 학문이 있으니 고증의 학문은 漢學이며 의리의 학문은 宋學입니다. 사실 양자는 큰 길을 가는 데 한가지일 뿐입니다. 천만 년 동안 공자와 맹자의 마음의 전수를 높이 받들어 스스로 程朱를 삼가 지키는 것을 指南으로 여기며 선비들은 머리를 묶고 이를 받아 읽으며 程朱 大儒의 논의를 익혀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여러 전적을 두루 섭렵하고 견문이 나날이 넓어지면서 마침내 송유를 얕잡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정주를 배반하기까지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병폐입니다.([추사 김정희 연구],후지츠카 치카시, p.362,)
 

의리가 송유에 의해서 더욱 정밀해지긴 했으나 송유들이 스스로 의리를 보는 것이 분명하다는 믿음 때문에 이따금 옛 訓詁를 무시했습니다. 예컨대 [爾雅]와 [說文]은 실로 경서 훈고에 있어 필수 자료인데 어찌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경] 내의 訓釋은 예부터 사승되어온 것인데 어찌 후인이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文意에 의거하여 古訓을 바꿔서야 되겠습니까. 살펴보면 주자는 ‘名’을 ‘稱’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컨대 <齊風>의 ‘猗嗟名兮’에 대해 <毛傳>이 [이아]에 근거해 ‘눈 위(目上)를 名이라 한다’ 하였는데 어찌 ‘名稱’의 ‘名’으로 해석해서야 되겠습니까. 고인의 사승은 스스로 그 내력이 있으므로 후인이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문의로 개괄해서는 안 됩니다.([추사 김정희 연구] p.363)

[康誥] 首節에 '周公咸勤乃洪大誥治’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의 ‘大誥’ 두 글자는 실로 <강고>. <酒誥>. <梓材> 3편의 총서로서 주공의 저서임을 분명히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蔡傳. 尙書集傳>에서, ‘<洛誥>의 錯簡’이라고 해버린다면 <강고>가 周公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고찰할 수 없습니다. 이 단락만이 三誥의 첫머리에 총결된 것은 史臣이 이 三誥가 바로 주공이 지은 것임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후대 학자들은 이 뜻을 모르고 단지 ‘王若曰孟候朕基第’만 보고, 이 封爵이 무왕의 사당 안에서 이루어져서 무왕의 말씨로 기술한 것이어서, ‘王若曰’ 세 글자는 주공이 특별히 쓴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좌전]과 [사기]에서 모두 성왕 때에 강숙을 책봉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宋儒들이 무왕이 강숙을 책봉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면 이는 [좌전]과 [사기]를 모두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선 간략히 한두 가지를 예을 들어 고대에서 師承으로 내려온 것을 반드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추사 김정희 연구] p.365)

고대에 經師가 전승한 것 가운데 더러는 각자 그 선생 학설만을 존중해서 반드시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곳이 있는데, 그 가운데 [三禮]가 가장 심합니다. 주자의 [儀禮經傳通解]는 가장 성과를 이루었고, 黃勉齋와 楊信齋는 모두 주자의 학문을 계승하여 이를 찬양하고 보충, 증명하였습니다. 양신재의 글이 이따금 후인의 보충과 증명이 필요한 것이 없지 않지만 보충과 증명이 자신의 견해를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가볍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추사 김정희 연구] p.366)

제 생각에, 오직 옛 뜻만을 삼가 지켜야 하는 것은 <書序>와 <詩序>이며 반드시 고찰해야 할 것은 [樂記]의 分篇, <玉藻>의 闕脫, [儀禮]의 今. 古文 등입니다. 鄭康成이 주장한 “褅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다”라는 설은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 그가 지은 [魯禮褅祫志]가 注疎의 여기저기에 보이니 초록하여 증거자료로 삼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옛 사람이 [禮]를 지은 것은 원래 그 당시의 쓰임에 필요해서이지 후인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려 함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독자들은 마땅히 그 同異만을 고찰해야지 당시의 쓰인 것에 천착해서는 안 됩니다.([추사 김정희 연구] p.367)

의리의 학문만큼은 부질없이 의론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경학이 크게 완비되어 六經이 태양이 밝게 비추는 것과 같은 때에 결코 性理와 도덕의 공허한 말만을 강론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전인이 이미 강론하여 밝힌 것을 지금 다시 강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하는 일은 오직 성인의 말씀을 삼가 받들어야 하니, ‘많이 듣고, 의심을 해소하고, 말을 신중히 하라’는 이 세 마디가 이를 모두 대변하고 있습니다.([추사 김정희 연구] p.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