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스승과 學緣의 영향 : 翁方綱 (4)

clara jeon 2019. 1. 12. 16:58

       다음의 서찰은 1816년 1월 25일, 84세의 담계가 전년 11월 14일 편지글에 경학 연구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 미진함을 겸손해 하며 다시 曲盡한 마음으로 31세의 추사에게

골똘히 생각할 대 귀하께서 옛 서적을 상세히 추적하고 재능과 힘을 길러 힘써 노력한다면 미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노부가 어리석고 졸렬하고 무능하나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곡진한 가르침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요체를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서 가름하면 이 일은 오직 정성을 다해 전념하는데 달려있습니다.

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어 담계는 한 마디로 학문하는 자의 道理는 漢宋을 不門,不分하고 精密과 專念의 硏鑽이지 달리하는 길이 없다고 한 마디로 갈음하며 “보내주신 수천 수백 자를 받고 매우 감사했습니다. 귀형께서 갈증을 풀어줄 우아한 뜻을 보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라, 오히려 謙讓해 하며, 수천 수백 자에 달하는 추사의 물음에 단락마다 일일이 예문을 들어 친절히, 아들을 여윈 슬픔을 추사를 보듬어 相殺하는 듯, 추사의 학문이 나날이 독실해 지는 것을 기뻐하며, 周到綿密하게 추사를 학자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다. 담계는 그의 아들 옹수배와 옹수곤이 젊은 나이에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불운을 당하자 자식에게 못다한 정을 추사에게 내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1818년, 86세로 卒할 때까지 추사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다.([완당평전]1, 유홍준, p.107)
       담계가 추사에게 보낸 서독을 읽어보면 “노부가 어리석고 졸렬하고 무능하나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곡진한 가르침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라 한 그의 다짐이, 약속이, 스승으로서 역할에 어긋남이 없이 서간문 전편에 一片丹心으로 曲盡하게 흐르고 있다.  담계의 정밀과 전념이 단지 학문에 局限된 자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정밀. 전념, 그 격물치지의 最善의 모습이 때로는 마음에 눈물이 고이는 감동을 준다. 200여 년 후, 21세기에 이를 읽는 후학들이 이러한 감명으로 젖어 학자로서의 精密專念 格物致知 道理를 성찰, 절로 마음에 刻印하게 되는데 당사자인 추사, 남은 아들 둘을 여위고 홀로 그림자만 남은 쓸쓸한 石墨書樓에서 84세 노인 담계가 시력이 떨어진 노안을 집중해 특히 추사를 위해 쓴 장장 1,800여 자의 커다란 글씨, 그의 지극한 정성과 애정이 글자 위에 넘치고 있는 이 서찰을 받아보았을 때의 감동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추사는 이 서찰을 표구한 뒤에

사실을 밝히는 일은 책 속에 있으나,
이치를 궁구하는 일은 마음에 있다.
옛일을 고찰해 새것을 고증하는 것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라고 공손히 써서 제찬하였다.([추사 김정희 연구],후지츠카 치카시,p.370-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