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에서의 家庭敎育- 11

clara jeon 2018. 9. 17. 17:50


추사는 무모한 만용으로 치기어린 열정이 아닌, 사자가 먹이를 잡을 때에 조차도 “마음이 거칠어도 안 되며 또 빨리하려 해도 안 되며 또 맨손으로 용을 잡으려는 식은 絶對로 안 된다.”는 “읽기를 천번 만번에 이르면 저절로 神明”의 절차탁마 학예의 길, “絶對 . 絶代” 성취를 위한, 精進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과 절제, 자제의 지혜를 이미 유배의 고초를 겪기 전에 깨달은, 평심정기 박학독행을 직도이행으로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평생배움인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깨달음을 아들들에게 자애, 자상하게 가르침을 준 家長이었다.
    위의 서술들로 추사가 가정과 가문의 화목을 위하여, 가족들의 바른 삶을 위하여 가장으로서, 월성위가의 종손으로서 책임과 사랑의 신념으로 格物致知. 實事求是. 直道以行하였음을 충분히 논지하였다고 사료된다. 이를 다시 반증하기 위한, 혹자들이 간혹 지적하는, 추사의 “관용 미덕에 결여”에 대한 반박하는 의미로 다음의 서간문을 제시한다. 1805년, 추사가 20세 때 부인 한산 이씨가 타계하였다. 갑작스런 아내의 喪變에 상심도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만 월성위가의 종손이니, 추사는 喪妻한 3년 후 예안 이씨와 재혼을 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사후에도 前 장인 격인 이희민과 긴밀하게 왕래를 끊지 않았다.([완당평전],1 p.51) 다음 편지가 바로 추사의 관용의 미덕을 再考할 수 있는 증거로, 재혼 후 7년 뒤에도 남양 홍씨 집안으로 시집간 죽은 아내의 언니, 처형이 서거했다는 부음을 듣고 누차 두 딸을 여윈, 慘慽으로 喪心 깊을 이희민에게 보낸 글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추사의 성품 “공은 매우 청신하고 유연하며 기국이 안한하고 화평”이 홍건하게 배어있어, 필자의 소견으로는 관용 미덕의 결여를 운운하는 논자들의 지적이 단지, 관용의 미덕과 현실에서의 불의와는 결코 타협할 수는 없는 추사의 義理적인 성미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 상처한 지 10년이 지나고, 재혼한 지 7년이 지나, 전 장인에게 손수 장정한 冊曆과 함께 보낸 추사의 눈물 고인 마음 씀이 眞情 아름다워 서간 전문을 옮겨 본다.

惠慶宮 慈馭께서 승하하시어 온 천하가 다 같이 애통하였는데, 令愛 홍씨 부인의 喪變까지 당했으니, 이것이 또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膝下의 참척은 비록 한 번만 있어도 이를 견딜 수 없는 逆理라고 하는 것인데, 下執事의 인자하심과 착하심으로써 백발 노경에 누차 이런 참척을 만나시어 마침내 오늘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습니다. 하늘이 재앙과 복을 반대로 베푸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심하단 말입니까. 더구나 객지에서 변을 당하셨으니, 정상이 더욱 참혹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慈愛로우심이 유독 높고 진지하시어, 몹시 슬프고 원통하고 괴로우시어 어떻게 마음을 가질 수 없으시리니, 우러러 위로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집사께서는 지금 大耋의 연세로 슬프고 즐거운 일을 겪으신 것이 또한 많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전의 슬픔을 達觀으로 풀어버릴 수 있었으니, 새로 당한 슬픔 또한 어찌 가슴 속에 남겨둘 것이 있겠습니까. 유익하지 못한 슬픔을 한갓 衰老의 감정에 덧붙이지 마시기를 지극히 비옵니다.
腹中의 體候는 다시 어떠하십니까? 어찌 손상되심이 없겠습니까마는, 여러가지로 삼가 사모하여 下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外甥은 營候가 한결같으나, 나라에 큰 役事가 있어 策應하는 일이 전보다 더욱 번다하니, 이 민망하고 절박한 私情을 어찌 다 형용하여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장정한 冊曆 한 件을 이에 보내 올리오니, 수령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밑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직 體用이 절서에 따라 康旺하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壯禮를 갖추지 못합니다.([완당전집], 卷二,, 書牘, <上外舅 李義民氏>, p.165)

    추사는 조선선비의 유학자로서 평생을 배움인의 기본자세인 敎學相長을 支存하였다. 儒學은 학문을 일상 생활에 합리적인 실재적인 쓰임새로 써서 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일구는 곧 實事求是로 明人倫 삶의 실행의 교육학문이다. 유학 교육의 지표인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함의에서 교육의 시초, 修身齊家에는 가정교육의 절대중요성이 내포되어있다. 국가를 형성하는 최소단위인 가정의 교육수준은 그들 가정의 인성 기틀뿐만 아니라 주변인들, 더 나아가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개인 삶의 질의 淸濁을 좌우해 평생 삶의 行福과 不幸의 여정을 露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