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에서의 家庭敎育- 10

clara jeon 2018. 9. 17. 17:45

   상우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서체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답답함을 “겨우 두어 글자를 쓰면 글자 글자가 따로 놀아 마침내 歸一되지 않는다.”라고 투정처럼 하소연한 모양이다. 추사는 "나는 육십 년이 되어도 오히려 귀일됨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너 같은 초학자이겠느냐”고 나무라지만 “그러나 나는 너의 이 말을 듣고서 매우 기뻐하며 반드시 소득이 이 한 말에 있다고 여긴다" 격려해 주며, “곧 네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進境의 곳이다. 모름지기 潛心하고 힘써 따라 꾹 참고” 라고, 학문의 길에서 인내가 곧 성취임을, 그리고 “이 한 관문을 넘어서야만 쾌히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니 절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退轉하지 말고 더욱 더 공덕을 쌓아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실망하지 말고 정진하기를 조언한다. 그리고 다시, 혹 노력하기를 포기할까 싶은 염려로 아들 마음을 다져주기를, 학문의 길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고비에서의 암담함에 고민하는 아들의 모습이, 오히려 소득이 있을 당연한 답답함이라고 희망을 주며 늘 노력하며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요체라고 敎學相長하고 있다. 이 서간문 외에도 추사의 서독을 읽다보면 참으로 상대의 마음을 치밀하게 읽어내는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 추사의 격물치지의 빈틈없음이 엿보이는데, 이 치열함이 누군가에게는 다정다감한 보살핌으로 공감의 유대관계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추사가 백파스님과 논쟁한 <백파 망종 15조>의 논지를 보면 질리기도 하는데, 이를 [완당전집]을 序한 金寗漢은 “...그러나 대체로 그 강하고 모난 성품의 고고하고 개결한 행실이 절로 재능을 감추고 세속과 혼동하여 남들과 함께 진퇴를 해서 봉록과 지위를 보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선생을 좋아하지 않은 자들이 그 단점을 조성하여 마침내 세 사람의 말에 의해 慈母의 북을 던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궁벽한 바다와 머나먼 변방에 귀양살이를 하게 되어 모진 고생과 상심 속에 구사일생으로 지내면서,....”([완당전집], 卷首, <완당선생전집서>, 金寗漢, p.2) 라 간파하였다. 그리고 이를 유홍준은 “그러나 완당의 열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관용의 미덕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매사에 시시비비를 확실하게 따져야 했고, ‘알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성미 때문에 결국 수많은 적을 만들어 끝내는 남쪽으로 귀양가고 북쪽으로 유배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완당평전],2 p. 711)”라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유홍준의 “완당의 열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의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추사는 학예를 겸비한 예술인으로 그의 격물치지의 학문, 경학, 금석학, 고증학 등의 탐구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추사체라는 그만의 개성을 창출하는 밑거름, 즉 추사만의 고유한 예술의 세계를 창조하게 하는 영감의 근원이었으며, 그 자체는 추사의 예술적인 삶에서의 직도이행 지렛대였다고 사료한다. 그러나 추사의 격물치지에는 단지 그를 학구적이지만은 않은, 원만하게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怪”적인 열정적 기질이 濕潤 되어 있다. 만약 추사의 直道以行이 직도가 아니라 圓道以行이었다면 추사는 이재 권돈인과 닮은 榮華의 벼슬의 삶을 영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추사의 직도는 그만의 독특한 기질 “추사체”로, 길 아닌 길로의 타협이 불가, 이로 인해 추사는 속세의 부귀영화의 길에서는 零落하였다. 추사는 직도 외에는 타협할 수 없는 性味로 直道의 범위 내에서 “공은 매우 청신하고 유연하며 기국이 안한하고 화평하여 사람들과 말을 할 때는 모두를 즐겁게”([완당전집], 卷首, <완당김공소전>, 閔奎鎬, p.12)하였고, 이러한 예술인으로서의 직도이행의 기질, 恒久不變 성미가 추사에게 불세출의 예술인이 되게 한 根器. 根基. 根氣. 根機였다. 이러한 근기들은 “완당 바람”을 일으켰고, 추사체를 창출하였으며, 또한 추사의 문하에서는 예인 제자들 뿐 만 아니라, 더욱이 개화기의 선각자 역할을 한 눈 푸른 제자들을 배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격물치지, 끝 간 데 없는 정상까지 오르는 全心 努力 推進力과 節制, 自制의 미덕을 추사는 아들 상우와 상무에게 “으르렁거리는 獅子가 코끼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며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라는 격물치지의 신념이 담긴, 詩作 藝道의 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