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추사의 평생배움에서의 家庭敎育- 7

clara jeon 2018. 9. 17. 17:31

    다음 글은 부친 김노경이 경상도 관찰사로 대구에 임직하고 있을 때에 부친을 뵈러 가서 그곳에 머문 동안 추사가 서울 장동 월성위궁에 있는 아내에게 지난 번 편지로 부부간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한글 편지이다.(유홍준,[완당평전],1. p.172)

지난번 가는 도중에 보낸 편지는 보시었는지요. 그 사이 인편이 있었으나 답장을 못 보았습니다. 부끄러워 아니하셨나요! 나는 마음 심히 섭섭했다오......
사랑채의 청지기들은 떠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합니까. 一念이 놓이지 아니하오며, 나는 오래간만에 (아버님) 뫼시고 지내니 든든하고 기쁘기를 어찌 다 적겠습니까.......
무인(1818) 2월 11일 남편으로부터

이와 같은 다정다감함이 同心인 다음의 편지글은 김노경이 1822년 57세 때에 동지정사로 연경으로 가는 길목,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작은며느리(김명희의 처)에게 보낸 자애로운 한글 서간문이다. (유홍준,[완당평전],1. p.203)

..... 그 동안 모두들 무양들 하고 紅疫 餘症은 다 快福하여 태평 지내느냐. 곽이(손자)의 장난은 어떠하여가며 知覺이나 열려가는지 잠든 밖(外) 어찌 잊으리.
紅疹은 終始 아니하는가 싶으나 그렇다 말고 부디 조심을 하여라. 나는 여기(압록강)까지 무사히 오고 進士도 잘 오니 다행하나 지금은 渡江을 하려 하니 오늘 이후는 소식도 막힐 일, 哀然하기 이를 데 없다. .......총총 이만 적으니 그 사이 태평하기 바란다.
임오 至月, , 念五日, 舅.

    다음은 추사가의 남다른 형제애가 돈독한 편지 중에 추사의 사려가 자상하게 스며있는 부분만을 발췌한 글이다. 이 서간문은 제주 유배 시절 때에 두 아우에게 보낸 글로 고단한 귀양살이 중에도 자신보다는 아우들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배어있어, 가화로 집안이 風飛雹散되었을 때에도 늘 함께한 삼형제의 友誼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월성위가의 종손으로서 가문의 버팀목의 역할에 誠心을 다하는 추사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이를 본받았을 두 아우는 추사가 유배로 부재한 시기에도 맏형의 대리로서 가문 지킴이 역할에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요즈음에 온 집안이 별고 없고, 從氏의 氣度 또한 만안하시며, 京鄕의 제반 상황이 한결같이 평온하고, 여러 姉妹와 庶母까지도 모두 편안한가? 舍仲과 舍季는 얼굴이 검고 바짝 야위어서 반드시 병이 날 염려가 있으니, 간혹 조금 나은 때가 있더라도 노력하여 밥도 더 먹고 약도 늘 써서, 이 바다 밖에서 오직 일념으로 걱정하는 나로 하여금 마음이 조금 놓이게 해주기를 천만번 축수하는 바이로세.([완당전집],1. <書牘>, 與舍仲 命喜, 제1신, p.116)

...소식이 있은 후로 한 달이 다 되어가서 봄이 이미 다하여 가는데, 그동안 온 집안이 다시 어떠한가? 舍仲의 諸節은 한결같이 그리 손상됨이나 없고, 京鄕의 상하 대소의 제절도 모두 편안한가? 嫂氏는 요전에 또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실로 늦출 수가 없네. 이 수씨의 이달 집안 생활은 과연 어떠한가? 사중은 수씨를 일개 眷屬으로 보아서 조금의 소홀함이라도 없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아마 서울로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매양 이 일을 쉽게 해내지 못하여 먼 외지에서 염려되는 마음을 더욱 말할 수가 없네.
兒婦의 分娩할 날이 또 멀지 않다고 하니 마음 속으로 기도할 뿐이네. 팔진탕을 달마다 쓰는 것은 비록 老産이 아니라도 좋은 것인데, 근래의 상황은 과연 편안한가? 江上의 새 아이의 百日은 이미 지났을 듯한데, 점차로 더욱 頭角이 우뚝 뛰어나고 乳道도 다른데서 구하지 않는다 하니, 또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네. 두 姊氏와 늙은 庶母는 계속해서 편안하시고, 平洞의 제절도 그리 손상됨이 없다 하니, 다행스러움을 이루 감당치 못하겠네.([완당전집],1. <書牘>, 與舍季 相喜 제5신, p.139)

추사는 노년에 들어 자신이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고 아우들을 향한 여념 없는 보살핌은 자상하였는데 그에 대한 傳承 <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선생이 계속) 병을 앓고 있을 때에 가운데 동생(중씨:명희)이 병을 앓자 선생이 직접 챙기며 아침저녁으로 그곳을 찾아가 병세를 살폈고, (당신의)병이 극심함에도 오히려 동생의 복약여부를 물으셨다.([추사연구] 제2호, <阮堂先生慶州金公諱正喜墓>, 김승렬 저, 이선경 역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