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출세(19)

clara jeon 2018. 7. 6. 23:34

   성균관 입학의 신분 자격은 鄭道傳이 쓴 [朝鮮徑國典], <學校條>에 보면 유학의 ‘有敎無類’, 신분차별 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열린 교육의 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公卿大夫와 民의 자제들을 구분 없이 교육한다.”고 법제화 하였다. 그러나 이는 법제상 명분에 불과한 것이지, 실제 신분차별이 엄연하여 성균관의 유생들은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의 자제들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鄕吏 자제와 같은 良民이 과거에 응시할 경우 四書 중 一經을 講試驗에서 통과 하여야 한다거나, 四祖單子를 제출하게 하는 등 양반들과는 차별적인 응시조건과 절차를 까다롭게 제시하여 양반 이외 계층들에게 학구적인 열의를 억제, 상실하게 하여 결국, 조선시대의 성균관 입학을 위한 과거제도는 지배계층들이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으로 독점화하였다. 따라서 집권 양반자제들의 立身出世 도구로 그 명분이 상실된 과거는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 그 弊端이 極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성균관의 교육이념인 “成人材之未就”, “均風俗之不齊” “明人倫, 成人才” 도 有名無實 침체되어, 결국 갑오개혁을 통해 과거제도가 폐지되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제5장 논의 및 결론의 1. 논의: 추사의 교육적 비판과 현대교육의 모순, 1)科擧, 入試위주 교육의 病廢(沒個性化)에서 상세하게 논술하기로 한다.
    그러나, 물론 앞에서 서술한 病斃도 있었지만 성균관은 학문의 전당으로서 조선왕조의 유교적인 지배이념을 보급하고 治國爲民 소양을 갖춘 관료를 등용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왕조체제 유지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는 성균관 교육단계인 [大學]의 至於至善을 修身하여 齊家治國平天下, 즉 유학의 최고 단계인 궁리. 정성. 수기. 치인의 도를 연마한 유생들이 조선왕조 500년사를 지탱해온 원동력, 유학의 實事求是, 선비정신의 具現이라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執權層과 民과의 소통을 위한 言路로 儒疏를 들 수 있다. 이들, 성균관 유생들은 단지 지배계층의 자제들로서 집권층에게 盲從한 것이 아니라 집권층과 民의 言路가 막히면, 治國爲民의 원칙에 벗어나면, 임금을 비롯한 政治權力이나 權勢家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儒疏로 直諫과 極諫을 행하여 국가의 장래를 최선봉에서 민의 편으로 이끌어 갔다. 따라서 이들의 儒疏, 현실 정치판에 직접 참여하기 전에 현실을 보다 철저하게 인식하여([조선시대 성균관 교육제도 대한 연구],p100) 治國爲民 致君澤民 治國平天下를 懇望하는 이들의 直. 極諫에 임금은 批答을 반드시 해야 했으며, 집권층 관료들 역시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고 있는 이들의 所信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治國의 근본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들 성균관 유생들의 儒疏나 直諫과 極諫에 대하여 집권층이 대처한 기사가 多數있는데, 관료집권층은 이들 유생들을 단지 배우는 학생 집단이 아닌 유학의 聖眞善美智德體의 배움을 治國爲民 致君澤民 治國平天下로 실현할 수 있는 나라의 지렛대임을 嘉尙하게 여겨,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학구적인 열의, 士氣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내포되어 있음을 기록의 행간과 행간 함축에서 느낄 수 있다. 다음은 그러한 感喜가 含意 되어있는 光海君代의 大提學 李廷龜 *上疏이다. *각주: 광해군을 옹립한 공신인 정인홍이 자신의 스승인 남명 조식이 5현(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의 문묘 종사에 배제되자, “이언적과 이황은 이록(利祿)을 탐내고 진퇴가 분명하지도 않은 몰염치한 사람들로, 선비의 칭호를 주기도 아까운데 도학을 인정해 문묘에 종사했으니 참으로 통탄스럽다."라는《회퇴변척소》을 올리자, 宣祖代부터 懇望하던 5현의 문묘 종사가 광해군 2년에 숙원이 이루어져 한껏 고무되었던 유생들이 정인홍을 《청금록(靑衿錄)》명부에서 삭제 버린 일로 정인홍을 옹호하는 광해군은 주도한 유생들과 師儒들에게 벌을 주었다.([조선국왕전]Daum 20180706)

광해군일기[정초본] 40권, 광해 3년 4월 15일 갑신 5번째 기사 1611년 명 만력(萬曆) 39년
대제학 이정귀(李廷龜)가 상소하였는데, 이르기를,

   "임금이 말을 받아들이는 도리에는, 그 말을 따라주되 그 뜻은 따라주지 않는 것이 있고, 그 말은 따라주지 않되 그 뜻을 따라주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로 그 뜻을 따라줄 경우, 말은 비록 따라주지 않더라도 됩니다만, 뜻을 진실로 따라주지 않을 경우, 말을 비록 따라주더라도 따라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위를 대하는 태도가 그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임금의 호오(好惡)는 백성들에게 그림자나 메아리가 되는 법이니, 진실로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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