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사랑채

출세(16)

clara jeon 2018. 7. 6. 23:25

   의정부는 조선왕조의 최고 政務機關이자 통치의 중심기관으로서 고려의 都評議使司를 폐지하고 정종 2년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성립되었고, 성립 당시에는 도평의사사와 명칭만 달랐으나 태종 5년(1405)에 독자적인 의정부로 정립하였다([조선정책결정모형], p190). 의정부의 주요업무는 [경국대전]에 의하면 “總百官 平庶民 理陰陽 經邦國”으로 百官의 統率, 庶政의 平治, 陰陽의 攝理, 邦國의 經論, 즉 의정부는 국가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하고 그 합의를 거쳐 국왕에게 稟達하고 국왕의 결재 역시 의정부를 거쳐서 해당 관서에 하달하는 것이 상례였다([조선정책결정모형], p190). “總百官 平庶民 理陰陽 經邦國”의 의미가 포괄적이듯이, 최고 정무기관으로서 三政丞을 포함한 최고의 실세들로 구성된 의정부 관료들은 정치·군사·외교 등의 정책을 論議, 合議 주도하여 국책의 판세를 管掌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러나『경국대전』이 반포된 이후 조선 전기에는 이처럼 막강한 권력의 政務機關으로 정치·군사·외교 등 통치중심기관이였으나 비변사(備邊司)가 실세로 대두된 조선 후기에는 명목상으로만 최고 관아로 계승되었다. 이는 의정부의 실제 기능이 왕권 강약과 왕의 자질 여부, 의정부 대신의 자질, 의정부와 육조·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상호관계, 원상제(院相制), 비변사의 대두, 당쟁, 세도정치 등의 모든 요소와 관련되어 있었으므로 그와의 여건 하에 수시로 판세가 변화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민족문화백과사전). 조선왕조 중, 후기 1592년부터 1864년 사이에는 비변사가 육조 등을 지휘하면서 정치·군사·외교 등 모든 국정을 관장하였으므로 의정부는 理陰陽과 관련된 儀禮를 담당하는 기구로 권한이 축소되었다.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특히 추사가 검상으로 재직한 순조 27년, 1827년은 안외순의 <추사 김정의 家의 家禍와 윤상도 옥사>  논지에 의하면 세도정치기의 제 3기, 즉 효명세자 대리청정기(1827-1830 反안동김문세력형성기*각주) 로 이미 한림 검열관, 홍문관 부교리, 규장각 대교, 암행어사를 任職한 추사의 역할은 왕과 왕세자의 近侍로 理陰陽에 관련된 의례를 주업무로 효명세자의 수명(受命) 활동, 상언(上言)·상소 등을 통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계문(啓問) 활동, 국왕의 지시를 받아 정사를 논의하거나 정사 논의에 참여하는 의의(擬議) 활동을 수행하였을 것이라고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추정할 수 있다.
*1. 정순왕후 수렴청정 즉위년(1800-3년 12월 경주김문주도기)
2.친정기(1804-1826 안동김문 주도기)
추사 급제 1819 한림검열사관 1820-1823 규장각보임1823-1826
3. 효명세자 대리청정기(1827-1830 反안동김문세력형성기)-경주김문 김노경 발탁-순조의 풍질이 심해진 것을 기화로 대리청정하게 된 효명세자가 새로운 자신의 세력을 육성하여 안동 김문에 대항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던 시기이다. 사실상 세자의 대리청정은 자신은 국왕 중심의 정국주도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 순조가 23년 5월 이후부터는 왕실의 공식행사의 군신을 만난 자리에 세자를 배석시키는 등 일련의 준비기간 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에 효명세자는 김조순 계열의 정승인 심상규를 중도부처하는 등 대리청정 초부터 적극적으로 국정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어서 남공철, 이상황 등 김조순계 두 정승마저 사직시키고 대신 김노홍, 홍인섭, 이인부, 김노경 등을 발탁하여 인사권과 재정을 맡겨 자기 세력화하였다.(안외순의 <추사 김정의 家의 家禍와 윤상도 옥사> [추사연구]4, p267) 추사: 의정부 검상. 검교 대교(1823 부터 1836년 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임직)
4.친정2기(1830-1834 안동김문 정국 재주도기)
추사:1835년 승정원 좌.우.동부승지, 1836. 1839 병조.형조참판. 1830년, 추사 45세 때, 평양감사로 임직 중이던 부친 김노경이 탄핵을 당해 1830년 10월 8일 강진현 古今島에 위리안치. 1836년 성균관 대사성.

11.순조 27년 6월 21일
순조실록 29권, 순조 27년 6월 21일 을미 1번째 기사 1827년 청 도광(道光) 7년

내각에서 회권하였는데 직각 6점에 서만순, 대교 6점에 조두순 등이다

내각(內閣)에서 회권(會圈)하여 【검교 제학 김조순(金祖淳), 검교 직제학 조종영(趙鐘永), 검교 직각 이가우(李嘉愚), 검교 대교 서희순(徐憙淳)·이헌위(李憲暐)·김정희(金正喜)이다.】 직각 6점에 서만순(徐萬淳)·이경재(李景在)·조용화(趙容和)이었고, 대교 6점에 조두순(趙斗淳)·김영순(金英淳)·성수묵(成遂默)이었다.
乙未/內閣會圈。 【檢校提學金祖淳, 檢校直提學趙鐘永, 檢校直閣李嘉愚, 檢校待敎徐憙淳、李憲瑋、金正喜。】 直閣六點, 徐萬淳、李景在、趙容和, 待敎六點, 趙斗淳、金英淳、成遂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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