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志烯 日記

오늘 2019-07-018 공부 되새김 <格物致知>

clara jeon 2019. 7. 18. 17:06




所謂致知, 在格物者 言慾致吾之知 在即物而窮其理也 盖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惟於理 有未窮故 其知, 有不盡也 是以 大學始敎 必使學者 即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而一旦 豁然貫通焉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此謂格物 此謂知之至也

이른바 앎을 투철히 함이 사물을 究明함에 있다는 것은 나의 앎을 투철히 하려면 사물에 即하여 그 이치를 窮究함에 있음을 말한다. 사람 마음의 靈明함이 앎이 없을 수도 없고 이 世界의 사물이 理致가 있지 않은 것이 없는데, 다만 그 이치에 채 究明되지 못함이 있기 때문에 그 앎이 不盡한 데가 있게 된다. 이러므로 大學에서 맨 먼저 가르치매 반드시 배우는 者로 하여금 天下의 사물에 即하여 그 이미 알고 있는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推究해 가서, 그리하여 그 궁국에까지 도달하게 했나니, 힘씀이 오래이고 나서 一旦에 확 트이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사물의 表와 裏, 精과 粗가 드러나지 않음이 없이 되고, 내 마음의 온전한 體와 커다란 用이 밝혀지지 않음이 없게 되리니 이를 두고 “사물이 究明됨”이라 하며, 이를 두고 “앎의 투철해짐”이라 한다.

배움은 앎을 투철히 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능히 그 앎을 투철하게 할 수 있으면 생각(思)이 날로 더욱 밝아져 가나니 오래이고 난 뒤에 이르러 깨달음이 있게 된다.
지각식별이란 자신이 존재하는 世界의 사물을 떠나서는 달리 인정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다시말하면 사물을 究明하여 그 이치를 터득해감이 깊고 넓으면 깊고 넓을수록, 투철하면 투철할수록 그만큼 知의 세계가 넓고 밝아지게 되며, 투철해짐을 의미한다([大學. 中庸], <大學> 李東歓 譯解, 靑木文化社(부산),1985,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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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희clara 默想

나는 News를 좋아한다. 아침 커피타임에는 반드시 뉴스를 챙겨 듣는다. 주로 라디오로 특히 정치판들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이유는 나는 현실의 이승을 걷는 살아있는 인간, 내가 사는 이 이승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삶의 이야기가 잼나고 즐긴다.

그중 가장 인간맛이 사는 정치판 뉴스는 맛나, 질리지도 않는다. 어쩜 그리도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비이성적이고 물질적인가?

그들의 대부분은 후후.

나는 기도를 늘 즐겨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십사 기도는 하질 않는다.
단지 지금 여기에서의 내 집을 나의 마음씀새로 천국으로 다듬질하여 하느님과 함께 들숨날숨할 뿐... 욕심이 없다.


正經은 아니지만 도마복음의

천국이 하늘에 있다면 새가 먼저, 천국이 바다에 있다면 물고기가 먼저 들어갈 것이다.(도마3/1,3/2)

천국은 네 안과 밖에 있다'(도마3/3)


의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나는 현실의 수난受難을 도전하고, 그리고 노오력으로 극복하고 감사의 기도로 매조지하기를 즐겨한다. 물론,

그 난해함을 푸는 열쇠는 나의 善意志와 하느님과의 동행이 우선이지만 말이다.
이로써  모든 삶의 苦難, 百尺竿頭를 차근차근 차분히 점령. 지금 여기에 나는 있다.

그러려면 모든 이성의 감각이 예리하게 투명하게 깨어 善惡이 분별, 초미세먼지 크기만큼의 오차가 없어야

지금 이 자리에 삶을 성공적으로 입지 시킬 수 있다.
삶은 지금 이 순간 순간 매서운 쏴한 칼바람에 온몸의 세포들이 얼음장의 투명함 눈을 뜨고 숨쉬는...

빈틈없이 위대하고 아름답다.

“지각식별이란 자신이 존재하는 世界의 사물을 떠나서는 달리 인정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위의 李東歓 譯解 중 가장 맘에 드는 문장이다.

기도는 순간순간의 현실을 걸어가는 초침을 통찰하여
眞善美한 나의 一擧手一投足의 言行을 하느님께 드리는 현실의 행위이다.
하느님은 그를 共鳴하여 받으시고 내가 사는 이곳에 영원으로 빛내림하신다.
그곳이 내가 지금을 사는 세상 여기 곧바로 천국이다.







글&그림:全志烯cl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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